
아트센터 나비가 새 공간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개관 이후 한국 미디어아트의 주요 장면을 만들어온 나비는 오랫동안 자리했던 SK서린빌딩을 떠난 뒤, 새로운 거점에서 다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새 주소는 종로구 율곡로 1길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문화시설이 밀집한 지역인 사간동-소격동 라인입니다. 최근 공개된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방향이 꽤 분명합니다. 전시와 교육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기관’이라기보다, 양자-예술 세미나와 결맞음 미술공모전, Creative AI 교육 프로그램처럼 연구와 교육, 공모와 협업이 교차하는 ‘플랫폼’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트센터 나비의 재출발은 한 기관의 이전 소식에 그치지 않습니다. 나비는 한국 미디어아트의 제도적 기반을 형성해온 중요한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그 공간의 변화는 단지 주소가 바뀐 일이 아니라, 한국 미디어아트 기관이 지금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다시 구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전시장을 중심으로 작동하던 미디어아트 기관이 연구와 교육, 기술 협업, 창작 지원을 함께 엮는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면, 그 변화는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흐름은 양자나노과학연구단(QNS)과의 협력입니다. 나비는 지난 4월 9일 이화여자대학교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협약의 골자는 양자물리와 예술을 접목한 예술,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추진하는 데 있습니다. 나비가 기술을 전시의 도구로만 다루기보다, 세계를 이해하고 감각하는 방식의 문제로 확장해온 흐름과 맞닿아 있기에 과학X예술의 결합사례로서만 바라보는 것은 단편적입니다.
이 협력의 한 축으로 2026 제4회 양자나노과학연구단 〈결맞음 미술공모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은 아트센터 나비, 세종시문화관광재단과 함께 ‘양자 결맞음(Coherence)’을 주제로 공모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전 회차가 ‘양자의 세계’, ‘스핀’, ‘큐비트’ 등을 주제로 삼았다면, 올해는 ‘결맞음’을 통해 보이지 않는 양자의 개념을 예술적 감각과 이미지로 번역해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양자-예술 세미나〉 역시 같은 흐름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 세미나는 중첩, 관측, 불확정성, 얽힘, 결맞음 같은 양자역학의 개념을 과학 지식으로만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예술적 사유와 감각 안에서 어떻게 다시 읽힐 수 있는지를 함께 탐색합니다. 다만 여기서 조심할 점도 있습니다. ‘양자’라는 말은 쉽게 신비화되거나 막연한 상상력의 언어로 소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이 개념을 예술적 은유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과학 연구기관과의 협력 구조 안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질문으로 다루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기존의 또 다른 중심축이었던 교육 역시 흐름을 잇고 있습니다. 동시에 진행되는 〈Creative AI : Computer Vision 교육〉은 나비가 기술 기반 예술 교육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프로그램은 창작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컴퓨터 비전을 중심으로 한 인공지능의 기본 원리와 생성형 AI 툴 실습을 다룹니다. CNN, GAN, Stable Diffusion, DALL·E 3, DiT, Veo, CLIP, LMM, SAM, NeRF, Super-Resolution 등 이미지와 영상, 멀티모달 모델의 주요 개념이 교육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은 나비의 재출발을 이해하는 데 또 다른 단서를 제공합니다. 인공지능은 이제 창작자에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이미지를 분류하고 생성하며 세계를 인식하는 조건으로 작동합니다. 그런 점에서 컴퓨터 비전을 배우는 일은 툴 사용법을 익히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 이미지가 어떻게 분석되고 생성되며 다시 감각의 환경을 구성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비가 이 교육을 창작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연다는 것은, 기술을 전문가 집단 안에 가두지 않고 더 넓은 창작과 사유의 장으로 옮기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이처럼 새 공간의 아트센터 나비는 여러 층위의 활동을 겹쳐놓고 있습니다. 양자-예술 협력은 과학 연구와 예술적 상상력의 접점을 만들고, Creative AI 교육은 창작자와 일반인이 기술의 작동 원리를 직접 배우고 실험하는 장을 제공합니다. 여기에 로봇, 철학 기반 예술 연구, 창작 지원 등의 활동이 더해진다면, 나비는 다시 한 번 기술과 예술, 사유와 감각이 만나는 플랫폼으로 자신을 갱신해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결과 겹침의 상황에 큐비트 개념이 떠오르는 건 나비의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트센터 나비의 이전은 한국 미디어아트 제도사에서 하나의 단절로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단절 자체보다, 이후의 재배치입니다. 서린빌딩의 나비가 한국 미디어아트의 기관 모델을 상징했다면, 새 공간의 나비는 연구와 교육, 공모와 세미나, 과학기술 협업을 통해 보다 유동적인 플랫폼으로 자신을 다시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한국 미디어아트 생태계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계속 살펴보려 합니다.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aliceon.co.kr 편집장
관련 정보
기관 및 프로그램 정보
· 기관명: 아트센터 나비
· 영문명: Art Center Nabi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1길 37, 1층
· 문의: 02-6949-1021
· 웹사이트: 아트센터 나비 공식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art_center_nabi
진행 프로그램
· 프로그램명: 양자-예술 세미나
· 영문명: Quantum × Art Seminar
· 기간: 2026년 4월 1일(수) — 5월 13일(수)
· 시간: 매주 수요일 18:00
· 장소: 아트센터 나비
· 협력: 아트센터 나비,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QNS)
· 링크: 아트센터 나비 프로젝트 페이지
공모 정보
· 공모명: 2026 제4회 양자나노과학연구단 결맞음 미술공모전
· 주제: 양자결맞음 또는 양자역학
· 접수 기간: 2026년 2월 2일 — 7월 31일
· 분야: 회화,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 사진, 영상, AI 생성 작품
· 대상: 일반 대중 및 학생, 개인 또는 팀
· 주최 / 주관: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QNS)
· 파트너: 아트센터 나비
· 링크: QNS 2026 결맞음 미술공모전 공식 페이지
교육 정보
· 교육명: 2026 Creative AI : Computer Vision
· 기간: 2026년 5월 12일(화) — 6월 9일(화)
· 시간: 매주 화요일 18:30–20:30
· 장소: 아트센터 나비
· 대상: 인공지능의 원리를 이해하고 싶은 창작자 및 일반인 15명 내외
· 모집 인원: 15명 내외
· 참가비: 300,000원
· 준비물: 개인 노트북, 구글 계정
· 문의: 02-6949-1021
· 링크: 아트센터 나비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