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 존재의 경계에서, 디지털 생태의 조건 탐구 5. 우박스튜디오_버려진 것들로 껍질을 구성하다_이다다

설치 전경, 현석현 촬영, 2025. © 우박스튜디오

버려진 것들로 껍질을 구성하다, 우박스튜디오 《부우우—피이이—: 가상의 부피감》

서늘하고 천장이 높은 어두운 전시장에 들어서면 푸른빛을 띤 거대한 원판이 공간 전체를 내려다보는 광경과 마주하게 된다. 그 아래에는 미래의 병원 장비를 연상시키는 기기들에 연결된 반투명한 공기 충전식 의상들이 세워져 있으며, 각 의상에는 LED 조명이 은은하게 빛난다. 이 장비들은 가상 세계로 접속하기 위한 장치이다. 거대 원판의 표면에는 저쪽 세계의 잔상처럼 보이는 영상이 흐르고 있다. 안내원들의 지시에 따라 장치를 착용하고 옷을 몸에 맞춰 고정한 뒤 신호를 기다리면 곧 ‘저쪽 세계’로 다이브 하는 접속 절차가 시작된다. 

VR이 시작되면 눈앞의 손은 개구리의 형태로 변하고 첫 제스처가 요구된다. 두 손끝을 모아 원형의 구멍을 만들면 이야기의 문이 열리고 비로소 가상 세계로 진입한다. 탁자와 컵과 같이 눈앞에 보이는 사물들은 손에 잡힐 듯하지만 붙잡는 즉시 모래처럼 흩어지며 데이터 조각이 되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간다. 이어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린다. “몸에 구멍이 생겼어. 어느 날부터 바람이 새는 소리가 들렸어. 병원에 가니 몸무게가 1g도 안 나가는 거야. 개구리 울음주머니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어.” 그리고서 업로드 된 데이터를 통해 재구성된 신체 이미지가 실재하는 몸을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는 서사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면 주인공이 데이터의 바다에서 ‘너의 조각’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주인공에게는 거대한 데이터 우주를 헤매는 일이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몸이 비어가는 순간마다 관객이 착용한 의상은 공기를 채우며 팽창한다. 내부가 빠져나간 자리와 맞물려 부풀어 오르는 압력이 몸 전체를 외부에서부터 압박한다.

설치 디테일, 2025. © 이다다

Q. ‘검은 공동(cavity)’은 어떤 계기로 인식된 것인가?
A. 고집이 센 할머니는 “나는 괜찮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하면서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병원에 가보니 CT 스캔을 한 결과 뇌의 가운데가 텅 비어있었다. 마치 ‘할머니가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할머니를 바로 옆에 두고 요양사, 의사, 보험사 직원들이 차례대로 발언을 하며 해결책을 논의했다. 정작 할머니는 소외된 상황이었다. 또한 병원에서 보여주는 의료 이미지들은 누군가의 해석 없이는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특정한 정보만 남고 다른 부분은 소외된다.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텅 빈 공동이 단순한 결손이 아니라 기술적 재현이 만들어내는 어떤 과정의 결과라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후 동세를 포착하기 위해 신체의 다른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거했던 마레이(É.J. Marey)의 장치처럼, 디지털 시대 전후로 등장한 다양한 공동의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기술이 대상을 포착하기 위해 먼저 결핍을 만들어내는 전제 조건으로서의 구조에 집중하게 되었다.

Q. ‘데이터의 유적’은 어떤 종류의 잔여를 가리키는가? 무엇이 거기에 가라앉는가?
A. 작품의 세계관에서 ‘데이터의 유적’에는 기술적 시스템이 포착하지 못하거나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흘려보낸 것들이 쌓인다. 송수신 과정에서 지연되거나 보류된 데이터, 스캔 과정에서 탈락한 신체 정보, 노이즈, 기능을 다한 디지털 신체, 더 이상 호출되지 않는 기억의 조각들이 포함된다. 한편 현실 세계의 데이터센터는 비물질적 구조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물리적 부피를 점점 확장하는 장소이다. 기술의 시야 밖에서 관찰되지 않는 조각들, 임시적이고 유동적인 흔적들을 오히려 다시 생존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데이터의 유적’은 기술적 시스템에 의해 탈락한 층위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상정되었다. 

Q. 마지막 장면에서 복제된 할머니들이 춤을 추는 이유는?
A. 몸에 생긴 구멍, 개구리 손으로 변한 신체와 같은 비일상적 장면, 그리고 미묘한 불쾌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순간을 만들고자 했다. 춤을 추는 존재가 디지털 트윈인지 실제 할머니인지 구별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움직임의 원본은 실제 무용수의 움직임이지만, 모션 캡처 이후 생성된 더블의 동작은 어느 정도 원래의 몸짓과 어긋나 있어서 기묘한 지점이 있다. 그런 어긋남과 이질적인 간극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VR 플레이 장면, 2025. © 우박스튜디오

* * * 

전시는 언뜻 보아서는 현실의 존재가 사라진 자리를 데이터가 대체한다는 디지털-가상세계 담론의 전형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술에 의한 비가시화, 소외, 신체를 스캔한 데이터 등은 배우의 디지털 더블을 둘러싼 산업적 갈등1) 에서 나타나듯 이미 일상에 익숙하게 침투한 어휘들의 구성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업이 다루는 ‘검은 공동’은 실체의 소멸을 가상이 대신하는 구조가 아니다. 여기에서 결손은 기술이 대상을 포착하는 과정에서 정보의 압축과 삭제가 이루어지며 생겨난 잔여이다. 현실이 줄어드는 만큼 그에 비례하여 가상의 대체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재현이 남긴 누락과 오차의 자리에 가상 세계 고유의 부피가 형성되는 구조이다. 

이를테면 더 이상 쓰임이 없는 사물들은 붙잡히는 순간 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부풀어 오르다 흩어지고, 개구리의 손으로 변해버린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공간에서 서사가 이어지는 동안 결정적 순간마다 장치의 공기 주머니가 부풀어 오르며 데이터가 빠져나간 신체를 ‘현실의 외부’에서 실제로 감싸는 압력이 몸을 조인다. 주인공이 말하는 ‘나’는 또한 누구인가. 몸무게가 1g만 남았다는 진술은 현실의 몸이 아니라 디지털로 압축된 저쪽 세계의 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데이터의 폐허가 펼쳐지고, 그 아래에는 새어 나간 데이터의 전송되지 못한 조각들, 재현되지 못한 신체의 흔적, 포착 과정에서 탈락한 파편들이 한데 모여 가라앉아 있다.

의상 디테일, 2025. © 우박스튜디오

이러한 연출과 내러티브는 강렬한 이미지를 형성하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소외의 양상들이 하나로 묶이며 흐릿해지는 지점도 있다. CT 영상에서 검은 영역으로 기록되는 결손2)이나 모션 캡처에서 누락된 동작, 송수신 과정에서 지연되는 데이터의 잔재는 기술 장치의 한계에서 비롯된 소외이다. 반면 사용자의 선택에서 폐기되는 데이터나 ‘쓸모없음’으로 여겨지는 노화된 신체는 사회가 요구하는 효용의 기준에서 벗어나 발생하는 생물학적·사회경제적 소외에 해당한다. 한편 의미를 갖지 못해 ‘노이즈’로 남는 파편들은 오히려 기술이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된 흔적3)으로, 의미 체계와 기록의 불일치에서 생겨난 또 다른 층위의 잔여이다. 이들 기원이 다른 잔여들을 모두 ‘데이터의 유적’이라는 하나의 지형으로 침전시킨다면 각기 다른 비가시화의 구조가 희석되는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이러한 애매함은 전시가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서로 다른 기원의 잔여들은 분리되거나 해석되지 않은 채, 경계 없이 한 덩어리로 묶이게 된다. 결국 개구리가 들어서는 ‘가상의 부피감’은 결손의 자리에 출현하는, 데이터로 된 가상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이성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non-rational) 부피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내레이션 그대로 “납작해진 것들 사이로 몸이 떠오르고 너와 감각과 세계가 연결”된다. 개구리 손을 가진 복제된 할머니들이 춤을 추는 그로테스크한 광경 속에서, 전시는 서사적 수렴 대신 부풀리는 감각을 관객의 몸에 여운으로 남긴다. 기술이 버린 조각들로 세계를 다시 구성할 수 있을까. 한 번 사라진 것은 다시 돌아올 수 없고 남은 조각들은 각자의 기원을 잃는다. 경계 없이 뭉쳐지는 잔여들은 저쪽 세계에서 또 하나의 현실이 되어 부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운행은 멈추지 않은 채 계속될 것이다.

글. 이다다.


1) YTN, “미 배우·작가, 63년 만 동반 파업 결의…할리우드 타격 우려”, 2023년 7월 14일.

2) CT 영상에서 검게 나타나는 저음영 영역은 뇌 조직의 위축이나 뇌척수액의 증가로 해당 영역이 주변 조직보다 X선을 덜 흡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실제로 해당 공간이 비게 되는 것은 아니다.

3) 키틀러(F. Kittler)는 『축음기, 영화, 타자기(Grammophon, Film, Typewriter)』(1986)에서 악보가 소음을 배제하고 소리만 선택하는 것과 달리 축음기는 소리와 소음을 모두 동등한 파동으로 기록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는 의미 체계의 필터가 작동하지 않을 때 남게 되는 ‘기술적 잔여’이다.


행사개요

전시제목: 우박스튜디오 개인전 《부우우—피이이—: 가상의 부피감》
참여작가: 우박스튜디오
전시장소: This is not a church (TINC)
서울특별시 성북구 동소문로10길 34-16
전시일정: 2025.11.12 – 11.26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 연재는 2025 광주 GMAP 디지털아트컬쳐랩 리서치랩 ‘아트라이터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