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난 뭘 할 수 있지?” 기후위기를 실감한 후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다. 아마 다른 분들도 그런 질문을 한 번쯤 던져봤으리라 생각한다.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을 것이고, 이미 나에게 맞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는 분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미 제로 웨이스트나 비거니즘을 완벽하게 실천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난 저렇게는 못 해‘ 하고 포기를 하거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해?’하고 질려버린 분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나 혼자만의 실천이 너무 작은 것 같아 무력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께 티슈 오피스가 기획한 <숨은 요정 찾기>라는 귀여운 테스트를 소개한다.
그럼 난 뭘 할 수 있지?
‘내 안의 기후위기 요정을 찾아서!’라는 슬로건을 단 <숨은 요정 찾기>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ooo(정세원 작가)의 귀여운 일러스트레이션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ooo의 팬이라면 그의 4컷 만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정’이라는 키워드를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일러스트레이션에 맞게 픽셀 아트 콘셉트로 디자인된 UI는 일러스트레이션의 매력을 더 살려준다. 본래 디자인 스튜디오였던 티슈 오피스의 센스가 돋보인다. ‘출발!’ 버튼을 누르면 내가 지정한 닉네임을 불러주며 테스트에 관해 설명을 해준다. <숨은 요정 찾기>는 일상 속 기후위기 대응 액션에 대해 알려주는 캠페인으로, 질문에 답하면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기후위기 요정을 찾아준다고 한다. ‘좋아요!’를 누르면 테스트가 시작된다. 단순한 화살표, 다음 버튼이 아닌 친근한 대사로 버튼을 구성한 것이 테스트의 발랄함을 더해준다.
테스트를 시작하면 여러 상황이 위트 있는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선택지 고르기 게임 같은 형식으로 등장한다. ‘거하게 회식한 다음 날 먹을 식사 정하기‘, ‘다이어트 방법 정하기‘, ‘홈파티 테마 정하기‘ 같이 실제로 겪어볼 법한 상황들이 제시된다. 테스트가 완료되고 ‘찾았다!’ 버튼을 누르면 결과가 나온다. 식생활에 관심이 많고 맛있는 것 먹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장바구니 요정‘이 나왔다. 결과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채식채식 기후미식‘이라는 장바구니 요정의 주문과 함께 실제로 생활 속에서 실천해볼 수 있는 액션들을 제시해준다. ‘친구 하기 좋은 요정‘도 함께 알려준다. 친구가 이 유형에 속한다면 같이 액션을 실천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이런 귀여운 요정이 ‘나’라는데, 자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숨은 요정 찾기>의 자랑 방식은 평범하지 않다. 무려 인스타그램 AR 필터를 사용해 내 요정을 자랑할 수 있는 것! 웃는 표정을 지으면 AR 필터 캐릭터의 표정이 바뀌는 인터랙션은 테스트의 재미를 끝까지 잃지 않게 해준다. 또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방식의 AR 필터는 아직 얼굴을 SNS에 올리기 부담스러운 사용자들에게도 편안함을 준다. 아무리 유료 광고를 많이 돌리더라도 이러한 온라인 캠페인은 참여자의 자발적인 공유를 유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온라인 퀴퍼>를 기획했을 때도 어떻게 사람들이 이미지를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드에 올리는 것을 유도할지가 큰 고민이었다. 공유 과정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숨은 요정 찾기>가 많은 사용자를 모은 비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용자 심리를 읽은 섬세한 설계
<숨은 요정 찾기> 테스트는 귀엽지만, 귀엽지만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테스트의 설계상 참여자는 어떻게든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답을 하게 되지만, 현실에선 이런 실천을 해본 적이 많이 없으니 찔리는 마음으로 답을 하게 된다. 테스트는 위기를 마주하는 상황도 종종 제시하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는 데에 더 집중한다. 테스트 질문에 응답하는 것만으로도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여러 액션을 알게 되는 셈이다. 내가 테스트 속에서 택하지만 실제로 택한 적이 많이 없는 선택지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요정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렇게 요정이 한 번씩 ‘되어본’ 사람들은 테스트와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지 않은 것들을 알려주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알려주고 칭찬까지 미리 해주는 것, 그것이 <숨은 요정 찾기>가 평범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식이다.
‘실천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부담에도 <숨은 요정 찾기>는 긍정적인 답을 준다. 총 여덟 친구로 구성된 기후위기 요정들은 각각 에너지, 생태계, 식생활, 자원절약을 담당한다. 각자 맡은 분야가 하나씩은 있는 셈이다. <숨은 요정 찾기>는 처음부터 당신에게 ‘으랏차차 두근두근 오물오물 알뜰살뜰 요정’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각자의 상황과 관심사를 존중해 하나의 요정이 되어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니 당신이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실천을 하기 부담스럽다는 것은, 시도해볼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는 뜻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숨은 요정 찾기>는 그 선택지를 고르는 걸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고, 테스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숨은 요정 유형 모아보기‘를 통해 더 마음에 드는 선택지를 직접 고를 수도 있다. 혹시 모른다. ‘으랏차차 요정‘ 액션을 수행하는 데에 익숙해졌다면 ‘으랏차차 두근두근 요정‘까지 도전해볼 수도 있을 수도.
테스트에 나온 선택지들을 이미 실천하고 계신, 이미 요정이었던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도 이 테스트를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친구들에게 테스트 링크를 공유하는 것. 혼자 실천을 하다 보면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의지를 북돋아 줄 동료가 곁에 없어서 외로울 때가 있지 않나. 친구들도 같이 실천을 했으면 좋겠는데 부드럽게 설득을 하기도 피곤하고, 그렇다고 강요처럼 보이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은가. 이 테스트의 설득 방식은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요정 동료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팁이 하나 있다면 이 테스트를 쓸 땐 기후위기를 실감하지 않아서 실천하지 않는 친구들보다는 방법을 잘 몰라서 실천하지 않는 친구들을 공략해볼 것.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힘
각종 연애 유형 테스트, 캐릭터 테스트가 넘쳐나는 요즘의 유행 속에서 한 온라인 캠페인이 한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온라인 캠페인은 링크를 통해 퍼져나가고, 퍼져나가면서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연애 유형 테스트를 공유한 연인들은 서로 ‘이건 맞네‘, ‘이건 아니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캐릭터 테스트를 한 친구들은 ‘나랑 제일 안 맞는 캐릭터 나온 사람 누구냐‘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온라인 퀴퍼>에 참여한 사람들은 ‘저 친구도 온라인 퀴퍼에 참여하다니‘하고 서로를 반가워하고, 함께 행렬을 만들어간다. <숨은 요정 찾기>는 조금 무거울 수도 있는 기후위기 대응을 화제로 만들어준다. 이런 화제로 한 번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이후에 계속 서로의 실천을 응원해주거나 팁을 나누는 참여자들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숨은 요정 찾기>는 편안하다. 이 편안함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후위기라는 무거운 주제를 접근시킬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이 고민의 중심에는 참여자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 어제까지는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컵을 사용했던 사람이 내일은 텀블러를 챙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애정, 그런 진심을 <숨은 요정 찾기>에서 볼 수 있었다. 다른 온라인 캠페인을 준비하는 분들도 캠페인을 기획하기에 앞서 어떤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싶은지, 그 사람들이 캠페인에서 어떤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지, 그 메시지를 받음으로써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셨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라도 그 진심을 알아본다면, 그 캠페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많아질 것이다.
link: 숨은요정찾기 findyourfairy.com
저자 약력
김헵시바
>닷페이스 디자이너 (2017~)
>온라인 퀴퍼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기획, 디자인 (2020)
>2020 코리아디자인어워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 수상 (2020)
>경기콘텐츠진흥원 문화기술 공공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컨설팅 (2020)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수상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