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회로에는 출구가 없다.” 오주영은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며 이 말을 여러 차례 말했다. 이 내용은 기술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작동할수록 문제가 생김에 대한 발언이다. 인공지능은 이미지를 읽고 그럴듯한 감상문을 만들고, 돌봄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은 새의 행동을 감지하고 훈련하며 관리한다. 〈BirthMark〉와 〈기계 감상 시스템〉에서 시작된 발화는 〈문학소녀 AI〉를 거쳐 〈황조롱이 드론〉과 〈유조키움센터〉로 이동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작업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기술은 대상을 이해하거나 보호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감각과 목소리, 존재는 시스템 바깥으로 자연스러워서 감각이 어렵게, 그렇게 밀려난다.
이 인터뷰는 AT&D School 2026 ‘관계로서의 기술(Technology as Relation)’에서 진행한 작가 토크와 비평 프로그램 이후에 마련된 것이다. 앞선 두 자리에서 작품의 구조와 서사를 따라갔다면, 이번에는 그 작업들이 시간이 지난 뒤 어떻게 다시 호출되고 변형되는지를 작가에게 물었다. 한때 실패하는 인공지능을 보여주었던 그의 작업은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고, 공존을 이야기하는 듯 보였던 드론새는 작가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어느 순간 “악몽”이 되었다. 기술이 변하면서 작품도 함께 움직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언제나 새로운 작업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주영은 기존의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때 세워둔 가설이 지금도 유효한지 거듭 확인한다. 인공지능에게 감상과 판단을 넘겨줄 때 인간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돌봄이 센서와 데이터, 지표와 절차로 번역된 뒤에 그것을 여전히 돌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실패 역시 관객을 하나의 결론으로 몰아가는 또 다른 폐쇄 회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번 인터뷰에서는 이 질문들이 어떻게 이동해왔는지를 추적했다. 출구 없는 회로를 설계하는 일, 그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오독과 잔여물이 생기는 일,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 반복은 작가에게 같은 답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이전의 답이 더 이상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 그런 순간을 발견하는 방법에 가깝게 느껴진다.
오주영, 〈The Kestrel Drone〉, 2024. 도시 환경에 적응한 맹금류인 황조롱이의 형태와 움직임, 소리를 모방한 드론으로, 새와 기술이 같은 도시 환경에서 공존할 가능성을 탐색한다.
허대찬: 작가님은 스스로 “같은 자리를 조금씩 다른 주제로 반복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AI 감상, 문학 챗봇, 드론, 돌봄 시스템이라는 서로 다른 장치를 거치면서도 계속 돌아오게 되는 그 자리가, 지금 시점에서는 어떤 질문으로 느껴지시나요? 처음 그 자리에 섰을 때와 지금, 그 질문의 모양이 달라졌다고 느끼시는 부분도 궁금합니다.
오주영: 먼저 제 작품이 계속 소환되고 재창작 되는 가능성을 가진 인터랙티브 아트라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들게 합니다. 실제로 2017년 작품은 2025년 개관식에서 새롭게 선보이도록 제안을 받거나 2020년도 작품의 데이터의 편향을 발견하고 2024년 새로운 주제로 해당 모델을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로 제안하거나 하는 식입니다.
저는 작품을 하나의 완결로 머물지 않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편입니다. 모든 작품이 두번 똑같지 않게 설계하기가 저의 욕심입니다. 다만 일관되게 제 작업의 명제가 “이 회로/설계엔 출구가 없다”는 것에 있다는 점에서 벽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명제를 증명하는 작업은 결국 성공할수록 더 완벽하게 작품의 경험을 제 의도에 맞게 닫는 구조로 만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품을 끝내고 새로운 도약이나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어야 하는 것 같은데, 제 작업은 문이 닫히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열 때마다 다른 벽이 보이고, 되려 문이 하나 더 닫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어쩌면 너무 오랜시간 작품들을 만들고 수정하면서 오는 인지적 부작용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출구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결과적으로는 구조적으로 예약돼 있던 반복과 닫힌 느낌 안에 틀어박혀 계속 작품을 만들어 나가고있습니다.
허: 방금 말씀하신 ‘출구 없는 회로’가 초기 작업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싶습니다. 〈BirthMark〉를 만드신 2017년과 지금 사이에는 멀티모달 언어모델이라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AI가 절대 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을 지금의 기술은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게 됐는데요. 지금 이 작업을 다시 만드신다면 무엇을 실패의 증거로 새롭게 세우시겠어요?
오: 여전히 감상을 시뮬레이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환원할 수 없는 개별 관람자의 시선을 결과물의 유사성만으로 인간의 감상과 비슷하다고 인정하는 것 자체가 인간 중심적인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스토리지 스토리(Storage Story)》 6편, 오주영 작가 편.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허: 〈기계 감상 시스템〉에서 관객들이 버튼을 누르고 비평문을 받아드는 반응을 현장에서 지켜보셨을 텐데요. 예상과 다르게 느껴진 반응이나, 오히려 작가님 스스로 그 비평문에 설득될 뻔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오: 제작 당시에 AI비평문에 가장 설득당하고 놀랐던 사람은 사실 저였습니다. 작품을 만들고 수백 번 테스트를 하면서, 제 인지적 과업을 AI에게 위임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2025년 하반기에는 모든 메일을 AI답장으로 처리했고, 머리를 써서 글을 쓰거나 메일조차 읽기 힘들어하는 자신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저는 인간보다 더 잘 감상하는 기계시스템이라는 주제보다는, 인지적 과업을 위임해버리고 외주화하는 인간을 더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길을 찾는 게 인간의 문명의 발전이었고, 한번 적용된 기술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속도의 문제인데, 그런 의미에서 별 생각 없이 그냥 재밌어 하시는 관객분들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굳이 사진을 넣어야 하는 공간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어 스캔하는 대담한 분들이 어쩌면 회로 밖에 서있는 제일 자연스러운 사람 같습니다.

오주영, 〈1974 장충동: 문학소녀의 비밀편지〉 설치 전경. 1970년대의 잡지, 신문, 광고와 개인적 기록을 연상시키는 자료들이 벽면을 채우고, 중앙의 컴퓨터와 재봉틀이 과거의 이미지와 오늘날의 디지털 시스템을 연결한다. 《메타플랫폼: 생성되는 관계들》, KF갤러리, 2026. 사진: 허대찬.
허: 〈문학소녀 AI〉의 챗봇이 수집한 데이터와 낭독된 문장들은 전시가 끝난 뒤 지금 어떤 상태로 남아 있나요? 계속 자료를 모으고 계신지, 아니면 이 작업은 당시의 상태로 완결해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오: 문장들은 계속 수집하고 있으며 2024년 전시 이후로도 책들을 스캔해 최근 2026년 KF갤러리에서 다시 전시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답은 매우 선별적이고 엉뚱합니다.
허: 작업의 대상은 이후 언어와 감상에서 새와 생태적 돌봄으로 이동합니다. 그 전환에서 황조롱이는 중요한 매개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황조롱이 드론〉과 〈유조키움센터〉는 모두 황조롱이를 모델로 삼습니다. 도시에 가장 잘 적응한 새를 도시에서 밀려난 새들을 가르치는 존재로 세운 선택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었는지, 작업을 진행하며 뒤늦게 발견한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오: 작품은 맹금류를 드론새의 모델로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됐습니다. 새들의 입장에서 가장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요소는 포식자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참새, 까치, 제비 등 모든 새들은 맹금류의 울음을 위험으로 학습하고 피합니다. 드론이라는 기술이 가진 시선의 위치는 맹금류의 포식성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조사 끝에 한국의 인간지형에 완벽히 정착해 텃새가 되어버린 맹금류인 ‘황조롱이’를 모델로 선택했습니다.
을숙도의 쇠제비갈매기는 따라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쇠제비갈매기와 황조롱이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보호종이어도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쇠제비갈매기 말 그대로 절멸위기(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고, 황조롱이는 많은 수 임에도 포식자로 얼마 없는 개체이기 때문에 여전히 보호종(천연기념물)으로 등록 되어있습니다.
오주영, 〈유조키움센터 가이드라인〉. 쇠제비갈매기를 돌보기 위해 황조롱이 드론을 ‘돌봄새’로 고용한 근미래의 센터를 설정하고, 인간·기계·비인간 생명이 얽힌 돌봄 체계의 가능성과 모순을 탐색한다.
허: 〈유조키움센터〉를 만드실 당시 우리동네키움센터에서 일하고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동을 돌보던 현장의 감각이 작업 속 드론새의 ‘키움’으로 옮겨오기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나 순간이 계기가 되었나요?
오: 돌봄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자원, 감정노동, 더 나아가 돌봄의 행위가 정말로 돌봄을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떤 지표와 의무들 그리고 그 행위가 떳떳하거나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 것 처럼 다뤄지는 의식이 아쉬웠습니다. “내가 여기서 이럴 사람이 아니다”를 끊임없이 호소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 조직에서 대상자의 연령, 절차와 시간, 학습 교구를 말하고 시간을 재고, 작가를 돌봄 선생님으로 고용해 그들이 한 내용을 다시 돌봄 대상인 어린이들에게 1-5까지의 숫자로 평가하게 합니다. 우리는 돌봄 결과를 지표로 받습니다. 함께하는 경험이나 시간 자체의 이야기보다 절차와 예산이 먼저인 공간에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 힘든 일을 이제 기계에게 더 적극적으로 수행시킬 시대가 올 것을 생각하니, 또한 그 기계에게 돌봄을 받게 될 이들, (또는 미래의) 저나 후대의 사람들을 생각하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도 함께 느껴졌습니다.
허: 지금 말씀하신 경험은 같은 작업을 설명하는 두 언어 사이의 간극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같은 작업을 논문에서는 ‘다중 공생’의 언어로, 토크에서는 ‘악몽’이라는 언어로 설명하신 것을 여러 자리에서 확인했습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서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그 두 언어 사이의 긴장 자체가 작가님께 더 중요한가요?
오: 그 긴장감에 답을 내리자면 저는 기술기반 학회의 논문의 언어에서는 ‘다중 공생’의 결 중 한 가지로 읽히려고 의도했습니다. 제 게임 속에는 새 연구를 포기하고 로봇새를 만든 연구자가 있습니다. 그 인물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기술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를 그럴듯하고 낙관적이고 납득가능한 논리로 무장합니다. 그런 의도의 가능성을 보고 초대해주신 관계자분들에 대해서도 큰 이견이 없습니다, 한편으로 작품의 시작 지점부터 작품의 물질적 구현의 선택과정, 영상 내러티브 전반에는 그것이 사실 불가능하고 오히려 파괴적인 시선임을 함께 드러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척하게 만드는 속임수라고 생각합니다. 설치할 때 마다 이 드론을 이제는 멸종 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그래도 불러 주시면 열심히 가서 설치합니다. 이 작업의 책임은 저에게 있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이제는 악몽으로 굳히려고 하고 있습니다.
허: 지금까지의 작업을 보면 실패와 침묵, 오류, 데이터의 부재처럼 ‘작동하지 않음’이 계속 서사의 출발점이 되어왔습니다. 작가님께 이런 작동하지 않음은 미리 설계해두고 찾아 나서는 것에 가까운가요, 아니면 작업을 만들다가 뜻밖에 마주치는 것에 가까운가요?
오: 미리 설계해서 막다른 길에서 제 메시지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저도 몰랐던 문제들을 발견하는 데에서 작품 메시지가 뒤집힌 경우도 있습니다.
허: 여러 작업을 관통하는 흐름을 두고, 감상과 소통, 돌봄이 관계라기보다 프로토콜로 바뀐다고 정리해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후반의 작업에서는 이 문제가 “돌봄은 관계가 아니라 프로토콜이 된다”는 문장으로 모이는 듯합니다. 이 문장이 작가님이 품고 계셨던 생각과 가까운지, 작가님이라면 이 흐름을 다른 언어로 이름 붙이실지도 궁금합니다.
오: 제 작품을 정확히 읽어 주셔서 매우 감사한 문장이었습니다. 이전에 5월 Arthon 수록된 저의 글 일부에도 공명하는 바가 있어 첨부합니다.
돌봄은 다시금 새의 생체학적 몸이 반영되지 못하는 센서, 소리, 데이터, 프로토콜로 수행된다. 드론새는 이러한 센싱된 자연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한다. 여기엔 자연의 비선형적 연결망, 새들 사이에서의 소통,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돌봄이라는 목적과 프로토콜만 존재하는 차가운 돌봄이다. 이는 돌봄이 외주화되고, 비인간 노동이 가장 값싼 대체물로 호출되는 구조를 그대로 반복한다.
허: 관계가 프로토콜로 바뀌는 이 차가운 구조는 지금까지의 작업을 정리하는 결론이면서, 다음 작업의 출발점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새롭게 구상하고 계신 작업이 있다면, 그 작업은 지금까지의 계보에서 이어지는 것인가요? 아니면 처음으로 다른 자리에서 시작하는 질문인가요?
오: 더 막다른 벽으로 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벽을 만드는 작가이니 만들 수 있는 것도 계속 더 심화된 벽인 것 같습니다. 대상이 달라지고, 주제가 달라지더라도, 제가 만든 작품이라는 폐쇄 회로 안에서 흘러나오는 다양한 잔여물을 추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허: 긴 시간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AI의 감상과 문학적 응답, 새를 가르치는 드론과 돌봄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작업들이 서로 다른 기술을 다루면서도 하나의 폐쇄 회로를 반복해서 구축해왔다는 점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 회로가 만들어내는 벽뿐 아니라, 작가님이 앞으로 그 안에서 추적하게 될 새로운 잔여물도 열심히 살펴보겠습니다.
토크 리뷰 – 기술이 이해한다고 말할 때: 오주영 작가 토크 기록
비평 – 새가 없는 새의 눈: 오주영의 실패하는 기술과 돌봄의 프로토콜
인터뷰 – 오주영: 출구 없는 회로와 차가운 돌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