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스튜디오: 탈락한 것들이 돌아오는 방식

우박스튜디오(우현주·박지윤), 2025 ACC 크리에이터스 레지던시 결과전시 《지능시대 – Artificial You》 전시장에서.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우박스튜디오의 작업은 기술이 세계를 더 정밀하게 포착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기술이 세계를 인식하고 분류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놓치는지, 무엇을 삭제하는지, 무엇을 끝내 이름 붙이지 못하는지에 주목한다. 지도에 포함되지 못한 장소, 스트리트뷰에서 사라진 이미지, 세그멘테이션의 경계에 남은 자투리 픽셀, 드론의 학습 데이터가 되었지만 정작 인식 대상이 되지 못한 나방, CT 이미지 속 검은 공동과 가상의 부피감은 모두 그런 질문의 자리에서 등장한다.

이 인터뷰는 AT&D School 2026 ‘관계로서의 기술(Technology as Relation)’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우박스튜디오 비평 프로그램과 연계해 마련되었다. 앞선 작가 토크와 비평 수업이 작업의 구조와 감각을 함께 읽어보는 자리였다면, 이번 인터뷰는 그 과정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제작의 판단, 리서치의 흐름, 기술적 오류를 서사로 전환하는 방식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우박스튜디오의 세계에서 오류나 노이즈는 단순히 수정되어야 할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 시스템이 현실과 부딪히는 지점이며, 작품의 서사가 시작되는 틈이다. 두 작가는 리서치와 실험, 세계관 구성과 인터랙션을 오가며 기술의 빈틈을 수집하고, 그 안에서 밀려난 존재들에게 다시 이름과 움직임을 부여한다. 이때 작업은 기술 비판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도와 데이터, 인공지능과 가상공간이 현실의 조건을 다시 쓰는 시대에, 감지되지 않는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어떻게 저항하며, 어떻게 다른 존재방식을 상상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우박스튜디오의 제작 과정과 리서치 방법, 〈Escape Maps〉, 〈No is Canceling〉, 〈Realtime Blue Boundary〉, 〈Voooooo—Peeeeee—〉로 이어지는 작업의 흐름을 따라가며, 이들이 기술의 경계에서 발견하고 발명해온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허대찬: 우박스튜디오는 두 분이 함께 작업하는 듀오입니다. 개인적 경험이나 관찰에서 출발해 리서치, 세계관 구성, 내러티브와 인터랙션으로 이어지는 제작 과정을 말씀해주셨는데요.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할 때, 처음의 사적인 장면이 작품의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은 어떻게 찾아오나요? 또 두 분 사이에서 아이디어를 밀고 당기는 방식은 어떤가요?

우현주: 저희는 기술이 현실과 부딪히는 아주 작은 장면들을 관찰하는 데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아주 일상적인 장면부터 거대한 산업 안에서 기술이 적용되는 모습까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실험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이상한 순간들에 관심이 가는것 같아요. 기술은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 속도와 현실의 감각 사이에는 늘 어떤 간극이 생긴다고 느껴요. 저희는 그 간극이 벌어지는 장면들을 수집하고,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상상을 시작해요. 예를 들어 이 기술이 이렇게 사용된다면 어떨까, 이 기술이 만든 세계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어떨까, 혹은 이 장면이 전혀 엉뚱한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요. 한 명이 어떤 질문이나 상상을 던지면, 다른 사람이 거기에 또 다른 가정을 덧붙여요. 그렇게 주고받다 보면 어느 순간 주인공이 생기고,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그 세계의 규칙 같은 것이 조금씩 생겨나요. 어떤 때는 머릿속에서 이미 장면과 연출이 스토리보드처럼 빠르게 펼쳐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흥미로운 기술이나 장면을 직접 실험해보다가 시작되기도 해요. 실제로 구현해보면 예상하지 못한 틈이나 오류, 구멍 같은 것들이 발견되는데, 저희는 그런 부분을 오히려 과장하거나 오용하는 걸 좋아해요. 그 작은 틈이 다시 새로운 질문이나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가 함께 아이디어를 밀고 당기는 방식은 정해진 절차라기보다 놀이에 가까운 것 같아요. 서로 계속 가정을 만들고, 규칙을 바꾸고, 장면을 덧붙이고, 캐릭터를 만들어 가요. 이 캐릭터는 어떤 성격을 가졌을지, 어떤 이상한 상황에 놓일지, 그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지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처음의 작은 관찰이 어느새 하나의 작품 세계로 이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곤 합니다.

허: 토크에서 “방대한 마인드맵을 짜놓고 거기서 추려나간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리서치가 워낙 넓게 확장될 때, 무엇을 작품 안에 남기고 무엇을 제외할지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작업에 끝내 넣지 않기로 한 것들이 이후 다른 작업의 씨앗이 되기도 하나요?

우: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나름의 타임라인이 생기더라고요. 작업을 하다 보면 이번에는 어느 정도 규모의 작품이 나오겠구나 하는 감도 조금씩 생기고요. 물론 생각한 것보다 항상 30% 정도는 더 어렵지만요. 마인드맵을 펼쳐놓으면 가장 중심에는 결국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나 질문이 자리하고 있어요.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계속 생기지만, 작품이 말하고 싶은 핵심은 조금씩 옅어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엮어나가면서도 중심에 있는 이야기를 더 강화하거나 뒷받침할 수 있는지 계속 살펴보게 돼요. 처음부터 마인드맵의 가지들을 많이 쳐내지는 않아요. 우선 펼쳐진 마인드맵 안에서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엮어서 작품의 큰 구조를 만들어요. 경험의 방식이나 스토리, 은유 같은 것들을 먼저 구성한 다음, 그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다듬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마인드맵의 범위도 함께 좁혀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마인드맵에 남아 있는 이야기들은 버려진다기보다 저희 관심사 안에 있는 또 다른 장면으로 계속 남아요. 어떤 이야기는 다른 작업과 연결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다음 작업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기도 해요. 이전에는 주변부에 있던 장면이 어느 순간 새로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아요.

허: 〈Escape Maps〉 시리즈는 지도에 없는 장소, 혹은 지도에 포함되기 어려운 장소에서 출발합니다. 작가님들에게 디지털 지도는 단순한 재현 매체라기보다 현실을 구성하는 장치처럼 보입니다. 이 작업을 거치며 “지도”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우: 〈Escape Maps〉를 진행하면서 지도는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라기보다, 현실을 다시 구성하는 장치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지도를 어떤 장소를 찾아가기 위한 매체로 생각했다면, 작업을 거치면서 지도 자체가 장소의 조건을 만들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장소를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감각이 더 강해졌어요. 어쩌면 지금은 현실보다 지도가 먼저 도착하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더 정확한 지도, 더 명확한 지도라는 이름 아래에서 현실이 지도에 맞춰 조금씩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이미 정해진 설계나 데이터의 방식에 따라 실제 공간이 정리되고, 분류되고, 이동하는 느낌이랄까요. 그 변화는 아주 극적이라기보다, 커다란 힘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지층 같은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땅이 서서히 이동하듯이, 지도도 단순히 세계를 보여주는 표면이 아니라 현실의 감각과 구조를 조금씩 바꾸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허: 부산에서 라이다로 스캔한 스트리트뷰 이미지가 삭제된 사건은 작업 전체를 압축하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당시 그 삭제를 처음 확인했을 때 어떤 감각이었나요? 실험이 실패했다는 느낌이었는지, 오히려 작업의 질문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우: 처음에는 라이다로 스캔한 데이터를 여러 방식으로 재구성해봤어요. 라이다 스캔 이미지 그대로를 스트리트뷰에 올려보기도 하고, 라이다 스캔 이미지와 실제 사진이 반반 섞인 장면을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또 어떤 이미지는 저희의 직관에 따라, 그 장소에서 뽑아낸 오브젝트를 라이다 스캔 풍경 위에 콜라주하듯이 배치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명확하게 어두운 하늘, 그러니까 가장 실제의 풍경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밤’처럼 보이는 데이터의 풍경만 사라졌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스트리트뷰에 관한 이야기를 모으는 과정에서, 유저들이 직접 올렸던 밤의 스트리트뷰 이미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와중에 저희가 업로드한 이미지 중에서도 가장 ‘밤’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장면이 실제로 삭제된 거예요. 그 순간은 실패했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작업의 질문이 훨씬 분명해지는 순간에 가까웠어요. 지도의 선별이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는지 투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실험과 이야기, 사건들 중에서 저희가 직접 경험한 이 삭제가 가장 매력적인 사건이 되었어요. 저희가 관찰자가 아니라 삭제된 당사자가 된 셈이니까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저희는 삭제의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결국 헤비 리뷰어들의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보며 이유를 추측할 수밖에 없었고, 그 상태 자체가 작업의 방향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지도 안에서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사라지는지, 그리고 그 기준을 우리는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그 사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허: 〈The Phantom〉에서는 구글 로컬 가이드와 지도 리뷰어들의 인터뷰가 중요한 재료가 됩니다. 리뷰어들은 지도를 더 실제처럼 만드는 사람들이지만, 정작 지도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인터뷰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나 태도는 무엇이었나요?

우: Escape Maps: The Phantom 작업을 위해 만난 헤비 리뷰어들과 인터뷰는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는데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도 위에 리뷰를 남기는 행위에 애정이 있었고, 그만큼 책임감도 가지고 있었어요. 구글 리뷰 시스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활동해온 분도 있었고, 직업이나 관심사에 따라 각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장소를 기록하고 있었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도에 남겨진 리뷰보다 남겨지지 못한 이야기들이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를 물어보면 리뷰를 보여주시는데, 정작 리뷰 자체는 아주 짧고 간결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 리뷰를 작성했던 순간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 장소에서 느꼈던 감각과 감정이 계속 덧붙고, 몸짓이나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더라고요. 지도에는 아주 짧게 남아 있는 기록이 실제 기억 안에서는 훨씬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모든 인터뷰이들이 이 플랫폼의 데이터 선별 방식을 아주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에요. 정확한 알고리즘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어떤 리뷰가 더 잘 노출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작성해야 하는지 몸으로 익히고 있었어요. 어떤 분은 평소처럼 짧고 정보 중심의 리뷰와 조금 더 긴 리뷰를 각각 작성해보는 실험을 했는데, 업로드는 동시에 했음에도 노출되는 시간이 달랐다고 이야기해주셨어요. 또 다른 분은 처음에는 일기처럼 가족과의 기억이나 감정을 중심으로 리뷰를 남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장소에 대한 정보 위주로 쓰게 되었다고 했고요. 저희가 리서치하는 동안에도 지도는 리뷰 형식을 계속 바꾸고 있었어요. 줄글 중심이던 리뷰는 키워드 선택이나 별점 중심으로 점점 단순화되고 있었고요. 반대로 자신이 상위 리뷰어이기에 상대적으로 노출이 잘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작은 가게를 찾아가 리뷰를 남기는 분도 있었어요. 모두가 이 유동적인 시스템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감각하고, 적응하고, 때로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우박스튜디오, 《No is Cancelling》 영상 스틸. 인공지능 비전 시스템의 ‘분할’과 ‘식별’ 논리를 가상의 장면 속 문장과 이미지로 되묻는다. 이미지 제공: 우박스튜디오.

허: 〈No is Canceling〉은 AI 세그멘테이션에서 분류되지 않는 자투리 픽셀과 노이즈로부터 Mx.NO라는 존재를 만들어냅니다. 작가님들에게 “노이즈”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어떤 가능성처럼 보입니다. 노이즈를 서사의 출발점으로 삼게 된 계기와, Mx.NO라는 존재가 생겨난 과정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지윤: 게임엔진, CRT 디스플레이,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면서 공통적으로 노이즈가 가상 공간이나 가상 이미지, 현실을 재현하는 움직임들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었어요. 기술적 인식 과정에서는 노이즈의 일반화 되지 않는, 예측할 수 없는 특성때문에 정돈하고 삭제해야할 오류이면서도, 재현 과정에서는 그 특성이 역으로 ‘현실같은’ 감각을 만드는데에서 Mx.NO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Escape Maps의 스트리트뷰 속에서 ‘보행자’로 인식되지 않아 데이터에 포함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미지를 리서치했던 경험도 Mx.NO라는 인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허: 〈No is Canceling〉에서 CRT TV를 사용한 점도 흥미롭습니다. 최신 AI 모델의 분류 실패를 오래된 매체인 CRT로 보여주는 선택에는 어떤 감각적·개념적 이유가 있었나요? 작동 원리가 눈에 보이는 기계와, 작동 원리를 알기 어려운 오늘의 디지털 기계 사이에서 어떤 대비를 느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박: 이제는 스크린 속의 이미지가 거짓은 아닌지부터 의심해야 하다보니까 매체 안에서 보여지는 이야기의 진실성도 점점 사라진다고 느꼈어요. 그러다 원리를 알기 어려운 디지털 기계나 생성된 이미지들과 다르게 직관적으로 작동 원리가 이해되는 CRT TV와 노이즈들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진짜’의 감각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상의 캐릭터이지만, 현실의 사건들을 기반하고 있는 ‘사라진 Mx.NO’의 이야기를 ‘진짜’ 사건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CRT를 통해서 재구성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서 채널을 직접 돌리는 행위와 알고리즘으로 제시되는 짧은 영상을 스크롤링 하는 행위의 대비도 이런 이야기 전개 방식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우박스튜디오, 《Realtime Blue Boundary》 설치 전경. 가상의 숲을 연상시키는 세로형 프로젝션과 상호작용을 위한 컨트롤 패널, 관객의 실루엣이 하나의 실시간 환경을 이룬다. 이미지 제공: 우박스튜디오.

허: 〈Realtime Blue Boundary〉에서는 나방, 드론, 푸른 경계, A.MO, VOID 같은 요소가 함께 등장합니다. 이 작업의 시스템을 관람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가운데 화면에서 벌어지는 비행과 양옆의 텍스트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박: 드론은 자연스럽고 완벽한 비행을 위해 나방으로 부터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드론의 인식 대상에는 나방이 포함되지 못해요. 푸른 경계는 기술 안에 포함된 것들만 존재하는 세계로, 이곳에서 나방은 세계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데이터: A.mo로써만 존재할 수 있어요.
푸른 경계 안에서 A.mo는 다른 VOID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고정되기위해 하나의 완벽한 회피 움직임을 반복 수행하지만, 점차 푸른 경계 바깥에 존재하는 원본, 마치 소문과 환상처럼 느껴지는 ‘푸른 점박이 나방’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A.mo가 VOID들과 나누는 대화문, A.mo의 수치 변화 등이 화면 양 옆에 쌓이면서 매번 다른 내러티브를 만들고, 결국 나방의 본능적 충동이 가득차면 시뮬레이션이 종료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게 됩니다.

우: 〈Realtime Blue Boundary〉에서 ‘푸른 경계’는 게임이나 지도 UI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른 원 형태의 시각 요소예요. 현재 위치를 표시하거나, 존재가 허용된 영역을 나타내는 표시죠. 저희는 이 푸른 경계가 오늘날 가상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공통된 문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존재는 그 안에서만 유효하고, 그 밖은 정의되지 않은 영역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이 작업은 그런 ‘허용된 세계의 경계’ 안에서만 살아가는 자율 드론이, 그 밖의 존재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 속 자율 드론 A.mo 역시 나방의 움직임을 학습한 가상세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푸른 경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어요. 반대로 VOID는 그 기술적 영역 바깥에 있는 존재예요. 원본인 나방처럼 분류되거나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 존재들이죠. A.mo는 비행하면서 VOID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학습된 회피 알고리즘과 원본이 가지고 있던 빛을 향한 본능 사이에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점차 원본인 나방의 존재를 인식하고, 푸른 경계 바깥의 세계를 욕망하게 됩니다. 가운데 화면은 A.mo와 VOID들이 실제로 만나며 비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이에요. 양옆의 화면은 그 만남에서 오가는 대화와 기록들이 쌓이는 공간이고요. 매 회차마다 다른 대화가 조합되기 때문에, 각각의 장면은 독립적이면서도 이전의 이야기들과 느슨하게 이어집니다. 양옆 화면의 위아래에는 A.mo의 비행 데이터와 함께, VOID를 만날 때마다 변화하는 회피와 충돌의 균형 그래프가 함께 표시됩니다. 각 VOID는 고유한 태그를 가지고 있고, A.mo와 만남을 거듭할수록 다음 회차의 비행 방식과 환경에 영향을 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허: A.MO가 작가님의 설계와 다르게 한쪽 방향으로 도는 패턴을 보였고, 그것을 버그가 아니라 질문으로 받아들이셨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업 중 기술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작동할 때, 그것을 오류로 수정할지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일지 어떻게 판단하나요?

박: 작품을 구상할 때, 리서치, 시나리오 및 세계관 구상, 기술 프랙티스 등을 동시에 다방면으로 진행하는데요, 각 과정에서 반복되거나 공통되는 키워드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Realtime Blue Boundary를 작업할때는 장애물을 회피하며 비행하려는 학습 정책과 빛에 이끌리는 나방의 본능 사이에서 방황하는 A.mo의 세계관을 구상하면서, 게임엔진 속을 비행하는 가상 드론의 인공지능 학습을 함께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 때 가상 드론이 보여주는 예측 못한 움직임이 세계관을 구상하며 들었던 ‘기술이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어떻게 기술 안에 포함되어 있을지’와 같은 질문과 맞물렸어요. 작품이 배제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작업중에 만나는 기술의 예상하지 못한 작동 방식들은 대부분 이야기의 일부가 되거나,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 작업 중 기술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작동할 때, 저희는 오히려 유레카를 외치는 편이에요. 물론 작품의 의도와 전혀 맞지 않거나, 목표로 한 설계를 방해하는 오류라면 원래 목적에 맞게 수정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 오류가 작품이 말하려는 메시지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버그를 없애기보다, 오히려 방향을 틀어서 그 오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연출을 수정하기도해요. A.MO가 한쪽 방향으로 도는 패턴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오류나 예상치 못한 방식이 어떻게 도출된 결과인지 파헤치거나, 추측하거나, 상상해보는 것도 좋아해요. 원인을 들여다보다 보면 그것을 더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그 오류를 응용해서 다른 가능성을 테스트해보거나, 당장 이 작업에 넣지 않더라도 다음 작업의 키워드로 저장해두기도 합니다.

우박스튜디오, 《부우우—피이—: 가상의 부피감》 설치 전경. 착용형 장치, 헤드셋, 프로젝션이 결합된 환경 속에서 관객은 가상 공간의 부피감을 신체적으로 체험한다. 사진: 조준용. 이미지 제공: 우박스튜디오.

허: 〈Voooooo—Peeeeee—〉는 CT 이미지 속 검은 공동, 디지털 트윈, 해저 데이터센터, 투명한 개구리, 에어수트가 연결되는 복합적인 작업입니다. 이 작업에서 “가상의 부피”라는 개념은 무엇을 뜻하나요? 또 관객이 에어수트를 착용하고 VR을 경험할 때, 어떤 감각에 도달하기를 기대하셨나요?

박: 디지털 트윈으로 대체되는 몸, 표면만 남아있는 가상공간의 이미지, 가상공간을 지탱하는 데이터들과 그를 위해 물리적인 공간을 잠식하는 데이터센터를 리서치하면서 현실에서 출발했지만 개인과 분리된채로 점점 거대해져가는 무언가의 부피감을 추적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현실을 전복해오는 이 부피감을 “가상의 부피감”이라고 이야기하고, 에어수트와 VR을 통해 가상에 몰입했다가도 다시 이질감이 느껴지는 여러 감각들을 만들어 이 부피감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우: 이 작업에서 “가상의 부피“, ”가상의 부피감”라는 개념은 여러 리서치의 키워드들이 겹쳐지면서 나왔어요. 디지털 트윈의 텅 빈 내부나 CT 이미지 속 검은 공동도 있지만, 그보다 앞선 리서치의 시작점에는 물리적 신체의 움직임을 기록하기 위해 실험했던 쥘 마레의 검은 공동 형태의 스튜디오가 있었어요. 신체를 데이터화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검은 공동의 심상들이 저희에게는 중요한 열쇠로 남았어요. 이런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물리적 신체나 현실의 부피가 데이터화되고 이미지화되면서 점점 납작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반면 그 모든 데이터를 유지하고 작동시키기 위한 가상의 인프라는 오히려 현실의 공간을 차지하면서 점점 더 커져가고요. 데이터센터처럼, 가상을 위한 부피는 규모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계속 부풀어 오릅니다. 그래서 저희가 말하는 “가상의 부피감”는 단순히 가상 공간 안의 입체감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가상과 가상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 속에서 증식하는 모든 부피, 그리고 그것이 심리적으로도 점점 더 거대하게 다가오는 감각을 함께 말할수있을 것같아요. 관객이 에어수트를 입고 VR을 경험할 때는, 그런 부피감을 단지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기를 바랐어요. 내러티브를 따라가며 만져지지 않거나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들,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전개될 때마다 그 부피가 몸에 닿는 압력처럼 조금씩 부풀어 오르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이 부피가 나와 무관한 어딘가의 거대한 세계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현재를 이루고 있고 우리가 직접 마주해야 하는 감각이라는 점을 신체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에어수트는 가상의 부피를 몸으로 번역하는 인터페이스에 가까워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던 가상의 세계가 사실은 아주 물리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몸과 현실을 점유하고 있다는 걸 조금은 이상하고 직접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일수 있진않을까 생각했어요.

허: 우박스튜디오 작업에는 반복적으로 “투명해지기”라는 전략이 등장합니다.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는 존재, 시스템의 경계에 걸쳐 있는 존재들이 계속 나타나는데요. 작가님들에게 투명해지기는 저항에 가까운가요, 생존에 가까운가요, 아니면 새로운 존재방식을 상상하는 일에 가까운가요?

박: 투명해지기는 감지되지 않는 존재들에겐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면서도, 그 특성때문에 기술의 입장에서는 감지해내야 할, 통제되기 어려운 저항요소로 여겨지기도 해요. 우리에게 투명해지기는 이 두가지 생존과 저항의 관점 사이에서, 계속해서 쫓고 쫓기며 밀려나고 재설정되는 경계를 유지하며 그 안에 머무는 방식같기도 하고요.

허: 작업들은 게임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게임처럼 여러 번 플레이하며 규칙을 체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시장에서 관객이 짧은 시간 안에 세계관과 인터랙션을 경험해야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진입 장벽을 낮추거나 반대로 낯섦을 유지하려고 하나요? 

박: 세계관과 인터랙션을 구상할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관객이 무엇을 어떻게 경험했으면 좋겠는지를 계속해서 의논하며 작업해요. 낯선 내러티브 경험이 중요할때는 의도되지 않은 기술적 불편함이나 번거로운 과정들을 줄이기 위해서 게임처럼 유저테스트 과정을 거치기도 하고, 반대로 낯선 인터랙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내러티브를 복잡하지 않게 가져가려고 해요. 전시장 공간 안에 입장해서 작품을 감상하기 전까지의 동선과 시선 등 관객의 입장에서 많이 고민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관객이 의도되지 않은 경험 방식을 보여주는 것도 좋아해요.

허: 작업을 보며 “탈락한 것들이 서사적 존재로 다시 등장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도에서 사라진 장소, 세그멘테이션에서 남겨진 픽셀, 나방, 검은 공동과 개구리처럼요. 작가님들은 이런 존재들을 “발견”한다고 느끼시나요, 아니면 “발명”한다고 느끼시나요?

박: 리서치 과정에서 탈락한 존재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발견” 하는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후 어떻게 탈락되었는지 질문하면서 그들의 공통된 특성이나 이미지, 기술적 배경과 이야기들을 하나 둘 씩 모아가다보면, 그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사건이 존재하는 것 같은 감각이 생기고, 그 사건을 상상하며 서사를 만드는 “발명” 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허: 긴 시간 인터뷰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박스튜디오의 작업이 기술의 경계에서 사라지거나 탈락한 존재들을 어떻게 다시 감각하고 서사화하는지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최근 칸 VR 부문과 안시 페스티벌 관련 소식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