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논문을 쓰면서 꽤 많은 선행연구를 찾아 읽었습니다. 하나의 논문에서 참고문헌을 따라가다 또 다른 논문을 발견하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연구를 찾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제목과 초록만으로 충분한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원문을 열어봐야 하는 논문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익숙한 화면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원문을 읽으려면 구매하거나 기관 계정으로 접속하라는 안내였습니다. 다행히 지금 강의를 맡고 있는 대학이 있어 학교 계정으로 도서관에 접속하면 상당수 논문을 별도의 개인 결제 없이 열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작성하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소속되어 있으면 기관이 지불하는 구독료 뒤로 접근 비용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소속이 없는 독립 연구자라면 같은 논문 앞에서 곧바로 결제창을 만나게 됩니다. 논문 한 편의 가격이 연구를 포기하게 할 정도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도 참고문헌을 따라 열 편, 스무 편을 읽다 보면 결제창은 꽤 성가신 둔턱이 됩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이 시스템의 구조에 눈이 가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찾고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을 쓰고 고칩니다. 학회에 투고해 심사를 받고, 수정하고 다시 검토받은 끝에 게재가 확정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논문이 출판되고 나면 그것이 어디에서 서비스되고, 누가 어떤 조건으로 읽으며, 이후 어떤 방식으로 이용되는지를 내가 온전히 결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학술출판에는 저자와 학회, 출판사, 데이터베이스 사이의 계약이 있고, 학회마다 저작권 양도나 이용허락 방식도 다릅니다. 그럼에도 막상 제가 쓴 글을 떠올리니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 글의 유통과 이후 이용을 결정하는 권한이 어느 순간부터 온전히 내 손에 있지 않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이용하게 되는 DBpia의 구조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DBpia는 학회를 비롯한 발행기관과의 저작권 계약을 바탕으로 학술자료를 서비스한다고 설명합니다. 자신이 직접 DBpia와 계약한 적이 없는데 왜 자신의 논문이 서비스되고 있는지를 묻는 저자를 위한 FAQ도 있습니다. DBpia의 설명에 따르면 학회가 논문 투고 과정에서 저자로부터 저작권과 관련한 처리를 일임받고, 이를 바탕으로 DBpia와 계약해 학술정보를 서비스하는 구조입니다. (DBpia 저작권 관련 FAQ)
여기까지는 크게 놀랍지 않았습니다.그러다 다른 페이지에서 낯선 항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AI 학습용 원문 데이터’. DBpia는 ‘데이터 구매 신청’ 페이지에서 인공지능 학습과 연구동향 분석 등에 필요한 데이터를 별도의 상품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원문 PDF와 서지정보, 초록·키워드·참고문헌·DOI 등의 메타데이터가 제공 대상에 포함됩니다. (DBpia 데이터 구매 신청) 음… 어?
며칠 전까지 저는 논문 한 편을 읽기 위해 대학 도서관 계정을 인증하던 연구자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종류의 논문들이 다른 문맥에서는 ‘AI 학습용 원문 데이터’라는 이름을 얻고 있었습니다. 논문이 데이터가 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논문은 오래전부터 검색되고 분류되고 색인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AI 학습용’이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내가 쓴 논문은 언제 AI 학습 데이터가 되는 것에 동의한 것일까.
DBpia가 연구자의 논문을 허락 없이 AI 학습용으로 판매한다고 곧바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개별 학회와 DBpia 사이의 계약이 AI 학습 데이터 제공을 어떤 범위에서 허용하는지는 공개된 안내만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궁금해졌습니다.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과 데이터베이스에서 서비스하는 것, 그것을 다시 AI 학습을 위한 원문과 메타데이터로 제공하는 것은 같은 이용일까. 그 사이에서 최초의 저자는 어디까지 알고 있고,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만 이런가 싶어 해외도 찾아봤습니다. 미디어아트와 기술문화 연구를 하면서 자주 찾는 《Leonardo》 역시 모든 논문이 자유롭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독 기반 논문이 있고, 기관이나 개인의 접근권이 없다면 비용이라는 장벽을 만납니다. Leonardo의 출판계약에서는 논문에 관한 일정한 저작권을 ISAST에 이전하고 저자에게 몇 가지 재이용 권리를 남겨둡니다. 현재 안내 기준으로 셀프아카이빙에는 6개월의 엠바고가 있으며, 즉시 오픈액세스로 출판하려면 1,800달러의 비용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Leonardo Copyright Information, Publishing Your Article) 해외라고 비용과 권리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비용을 내고 누가 권리를 가지며 누가 열어놓을 수 있는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여기에 조금 낯선 독자가 하나 더 들어왔습니다. 기계입니다.
사람이 논문을 읽는 것과 기계가 논문을 학습하는 것은 같은 일일까.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논문은 다시 한 번 이름을 바꿉니다. 학술논문이면서 동시에 ‘학습 데이터’가 됩니다. ‘데이터’라는 말은 생각해보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로 매끈합니다. 논문 한 편에는 연구자의 질문과 조사, 글쓰기와 수정, 동료평가와 논쟁의 시간, 그리고 그 반복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 수십만 편이 한꺼번에 묶이면 원문 PDF와 메타데이터가 됩니다.
근래 접했던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DATALAND가 문득 생각난 것도 이 때문입니다. DATALAND는 개관전 《Machine Dreams: Rainforest》에 사용한 Large Nature Model을 설명하면서 ‘ethically curated ecological archive’, ‘permission-based datasets’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DATALAND, Machine Dreams: Rainforest)
‘허락받은 데이터’라는 표현이 이 순간 훅 들어왔습니다. 물론 그렇게 선언한다고 해서 데이터 윤리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충분한 허락이라고 볼 것인지, 기관이 가진 자료의 이용을 누가 승인할 수 있는지 같은 질문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달라집니다. 무엇을 학습했는가가 더 이상 AI 작품 바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데이터의 출처와 허락의 과정까지 작품과 기관이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 안으로 들어옵니다.
뭉크의 세계 최대 컬렉션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미술관 MUNCH는 이 문제를 또 다른 방식으로 다룹니다. 《Edvard Munch: Connect the Lines》에서 관람객이 태블릿에 그림을 그리면 AI가 이를 미술관이 디지털화한 7,000점 이상의 뭉크 드로잉과 비교해 연결되는 작품을 찾아냅니다. (MUNCH, Connect the Lines) 여기에서 주목했던건, AI 기술보다 그 뒤의 작은 절차였습니다.
관람객이 전시장 스크린에 공유하기로 선택한 그림은 MUNCH의 자체 서버에 저장됩니다. 그리고 별도로 동의한 경우에만 전시가 끝난 뒤에도 그림과 제작 과정에 관한 정보를 연구와 비상업적 이용을 위한 데이터셋으로 보존하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MUNCH, How We Use Artificial Intelligence) 전시에 참여하는 것과 그 흔적을 미래의 데이터로 제공하는 것 사이에 한 번 더 묻는 과정이 있습니다.
물론 관람객이나 참여자가 만들어낸 결과물의 권리와 이후 이용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새로운 문제만은 아닙니다. 아론 코블린(Aron Koblin)의 〈The Sheep Market〉처럼 참여자가 자신의 작업이 어떤 맥락에서 이용될지 충분히 알지 못했던 사례가 있었고, 하렐 플리쳐(Harrell Fletcher)와 미란다 줄라이(Miranda July)의 〈Learning to Love You More〉처럼 참여자가 웹에 제출한 작업이 훗날 미술관 아카이브에 편입되면서 보존과 삭제, 익명화의 문제가 뒤늦게 제기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인터랙티브 아트 역시 오래전부터 관람객의 신체와 행위를 데이터로 삼아왔습니다. 그런 흐름 위에서 보면 MUNCH의 작은 동의 절차는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지금의 참여와 그 결과를 미래의 데이터로 보존하고 재이용하는 일을 같은 동의로 묶지 않고, 그 사이에 한 번 더 묻는 과정이 생긴 것입니다.
MUNCH는 여기서 더 나아가 문화기관이 관람객의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그 데이터의 미래 이용을 누가 결정해야 하는지, 미술관이 거대 기술기업을 위한 또 하나의 학습 데이터 공급처가 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공을 위한 문화 데이터를 만들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MUNCH, Museums, AI and Cultural Data)
여기쯤 오니 처음 DBpia 페이지에서 느꼈던 작은 어색함이 다른 모양으로 돌아왔습니다. DBpia와 Leonardo, DATALAND와 MUNCH는 서로 다른 기관이고 목적도 다릅니다. 어느 하나를 나쁜 사례로, 다른 하나를 좋은 사례로 나누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이들을 나란히 놓자 공통된 장면이 보였습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지식과 문화가 데이터가 되는 순간입니다.
논문은 PDF와 메타데이터의 묶음이 되고, 자연의 이미지와 기록은 AI 모델의 학습자료가 되며, 미술관 관람객의 드로잉도 새로운 문화 데이터셋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AI가 문화에 들어왔다는 것은 기계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뜻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가 써온 글과 만들어온 이미지, 쌓아온 기록이 AI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다시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누가 무엇을 데이터라고 부를 수 있는가. 누가 그다음 용도를 결정하는가. 그리고 처음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는 언제 다시 물어보는가.
선행연구를 찾던 어느 날, 저는 대학 도서관 계정으로 로그인했습니다. 조금 전까지 결제를 요구하던 논문이 열렸습니다. 누군가가 오래 시간을 들여 만든 연구였고, 제가 다음 생각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한 편의 글이었습니다. 그러다 몇 번의 검색 뒤 같은 종류의 글들이 ‘AI 학습용 원문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두 장면 사이에는 별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합니다. 논문은 언제 AI의 데이터가 되었을까요. 아마 어느 한순간을 가리키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만 한 가지는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처음 그 글을 쓴 사람의 동의가 언제, 어디까지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었는지 나는 제대로 알고 있었나. 생각해보면 이번 질문은 거기에서 시작됐습니다.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aliceon.co.kr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