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출신의 게임 개발자 곤살로 프라스카 Gonzalo Frasca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을 통해 비디오 게임이 현실 비판적인 대안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재기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가 주장했던 ‘배움의 재미’와 ‘깨달음의 재미’를 ‘비디오 게임의 재미’로 연관 짓기도 하고 브라질의 극작가 아우구스토 보알Augusto Boal이 관객과 배우가 고정된 역할에서 탈피하기를 제안했던 것처럼 게임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디자인함으로써 게임속 규범에 도전하는 관점을 주지하기도 했다. 게임 속 가상공간이 우리에게 한 켠의 현실이 된 오늘날 포스트휴먼 시대, 그의 메시지야말로 어느때보다 유효하며 모두 숙고해봐야 할 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게임에 대한 담론과 연구를 토대로 창작자와 플레이어의 경계 없이 폭넓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2021서울교육랩 <질문의 진화>는 동시대 예술가, 실천가들과 함께 인간 중심적 사고에 의해 대상화되었던 기계, 동물, 물질, 생태, 타자에 한 걸음 다가가고 공진화적인 관계를 그려보고자 다양한 토크와 워크숍을 마련했다. 특히 예술교육 실천가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열린 감각 확장 워크숍 중 하나인 ‘게임으로 플레이어와 대화하기’는 게임 메커닉을 바탕으로 게임 창작의 부분 부분을 살피고 게임의 다양성과 방향성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이었다.
‘게임으로 플레이어와 대화하기’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이끈 김영주는 조호연, 이강일과 함께 아트게임 그룹 룹앤테일로 활동하는 게임 디자이너이자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인터렉티브 요소를 사용한 실험을 벌이는 아티스트다.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도시에서 게임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해왔다. 그가 운영해왔던 시간에는 게임 매카닉에 대해 샅샅이 살펴보고 플레이어의 입장을 관찰해보는 것은 물론 게임 창작의 주체가 되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다양한 게임의 종류와 함게 플레이어가 행하는 게임 속 행동들을 찾아보며 게임의 메커닉을 살폈다. 또한 발화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한 게임 하우스의 매니페스토를 언급하면서 포스트 휴먼 시대 논의되어야 할 게임 교육에 대한 열린 의견을 주고받았다. 또한 텍스트 기반 알고리즘 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게임 툴 트와인Twine을 이용해 각자의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거대한 게임 산업에서 협소하게 자리 잡은 게임 연구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게임은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는 게임을 통해 새 기술을 익히고 성취감을 느끼며 공감대와 연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게임 메커닉이다. 메커닉이란 게임의 기본적인 툴을 포함한 시스템 전체를 말한다. 그리고 게임 디자이너는 게임이 어떻게 작동할지 구상한다. 게임의 목표와 규칙 진행 방법을 만들고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여기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줄 다양한 감각적 요소들을 고안해내는 일이다. 이러한 역할에 집중해보는 경험은 점점 한정되어가는 플레이의 개념에 대응하는 실천이자 주어진 규칙과 형식 안에서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플레이어가 되는 방법이다. 이 메커닉을 톺아보는 과정 중 김영주가 제안하는 것은 게임 속 플레이어들이 행하는 ‘동사’를 찾아보는 것이다. 어떤 동작으로 게임을 헤쳐나가는지 살펴본다면 게임의 주된 요소와 규칙 그리고 목적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본적으로 가다, 걷다, 뛰다, 날다와 같은 캐릭터의 움직임이 있고, 살다, 죽다 같은 동사를 통해 캐릭터의 생명력을 가늠할 수 있다. 때리다, 총을 쏘다, 빼앗다, 죽이다 같은 동사는 게임의 과정에서 일정 부분 공격성을 감지하기도 한다. 한편 사색하다, 기다리다, 창조하다 등 흔치 않은 동사를 발견하면서 특성 있는 게임을 구분해 낼 수도 있다. 이같은 발견은 추후에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게임에 적용해 말하고 싶은 내용, 유도하고 싶은 행동, 끌어내고 싶은 사유를 위한 단초가 된다.
다양한 동사를 유도하는 게임은 게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밤하늘에 뜬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게임이 있고, 그 게임을 엮는 장르 역시 별자리처럼 무수히 많다. 소위 인디게임, 아트게임으로 분류되고 있는 게임 장르 내에서도 #Arthousegames, #Personalgames, #Altgames, #Microgames, #Notgames, #Zine-game, #Seriousgames 등 해시태그를 앞에 달고 개성 있는 아이덴티티를 토대로 한 게임의 새 갈래가 만들어지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내게 맞는 게임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일 수도 있어요” 김영주는 구글 독스를 이용해 만든 게임이나 도시 재생을 주제로 도시가 변화하는 과정과 속도를 적용한 게임 등 과거 워크숍을 진행하면 만든 이색적인 게임을 설명하며 다양성에 대해 언급했다. 더불어 이렇게 다양한 게임이 존재하는 데 서포터가 된 게임하우스의 매니페스토도 언급했다. 리얼타임 아트 메니페스토Realtime art manifesto, 리젝타 Rejecta 등이 발표한 선언문이다. ‘너를 위해 게임을 만들어라’, ‘너의 친구를 위한 게임을 만들어라,’‘게임 만들기를 끝내라’, ‘사과하지 말라’, ‘허락을 구하지 말라’ 등 이러한 강력한 제언과 다짐으로 이뤄져 있다. 이 문장들은 모두 자기표현을 위한 게임을 만들고 itch.io 같은 대안 게임의 커뮤니티가 활력을 잃지 않는 데 기여하는 메시지다.
인류는 노는 데 타고난 종족이다. 그러나 산업에 결부된 동력, 트렌드가 이끄는 중력으로 인해 게임에 대한 인지영역은 점점 한정된 언어와 무의식적인 제약에 의해 지배되며 협소한 경험으로 국한되어가고 있다. 이를 탈피하는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은 직접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게임을 만드는 것이란 단순히 종이와 펜을 이용해 플레이하는 보드게임부터 트와인 빗지 등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이용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된다. 혹은 언리얼 엔진이나 유니티 등으로 폭넓은 세계관을 구체화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창의적 접근법과 해석 전략을 제시하기도 하고 비평적 플레이를 형성하기 위해 열린 결말을 구성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실용 인식론, 기호학, 신경학 등을 망라하며 얽히고섥힌 세계를 지탱하는 규칙들이 형성된다. 이렇게 복잡한 세계가 만들어질 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를 편견 없이, 스스럼없이 넘나들 때 상호 공존학 관용을 지향하는 다원 문화주의가 이루어진다.
유다미 (aliceon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