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T&D School 2026 《관계로서의 기술》의 세 번째 작가 토크는 양숙현 작가의 작업을 거의 이십 년에 걸쳐 거슬러 올라가는 자리였다. 최근의 작업만 놓고 보면 ‘사변적 물질’, ‘인간물질론’, 생성형 인공지능 같은 단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날 발표는 그 개념들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회화를 공부하던 시기와 어린 시절 접했던 영화와 게임, 인터랙션 디자인, 직접 장치를 만들고 사람들과 기술을 나누던 경험이 차례로 등장했다. 지금의 작업을 설명하는 말들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무언가를 만들고 실패하고 다른 장치로 옮겨가는 사이 조금씩 생겨났다는 사실이 토크 전체를 따라갔다.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와 인터랙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발표 초반에는 아도르노와 메를로퐁티, 벤야민 같은 이론가들과 함께 《아담스 패밀리》의 움직이는 손 ‘Thing’, 애니메이션과 게임 이미지가 나란히 등장했다. 작가에게 기술을 대하는 감각이 미술사나 미디어이론 한쪽에서만 형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화면 속 신체와 기계, 만화적 상상력과 인터페이스, 이론과 대중문화의 경험이 뒤섞여 있었다. 공식 작가 소개에서 양숙현은 2010년 이후 “기술 환경과 물질성의 교차 지점”을 찾아 작업해왔으며, 신체를 매개로 한 웨어러블에서 키네틱 설치, 알고리즘과 시뮬레이션의 오류, AI 생성 이미지까지 형식을 확장해왔다고 설명한다.
초기 작업에서 기술은 몸 가까이에 있었다. 장치를 몸에 붙이고 움직여 보거나, 센서와 액추에이터가 사람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했다. 이 시기에는 결과물 하나만큼이나 ‘직접 만들어본다’는 태도가 중요했다. 2009년부터 진행한 Project Moojigae를 비롯해 문지문화원 사이와 리프트 서울을 거치는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을 꺼내놓고 함께 배우는 MAKE 문화가 작업의 배경이 됐다. 이후 목진요, 박얼, 여진욱, 유상욱 등과 결성한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전파상(Jonpasang)에서도 제작은 한 사람의 숙련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수천 개의 모듈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Hyper-Matrix〉 같은 작업에는 제어 기술과 프로그래밍뿐 아니라 역할을 나누고, 조립 오차를 맞추고, 설치 현장에서 계속 수정하는 일이 따라붙었다.
이 대목은 《관계로서의 기술》이라는 이번 프로그램의 제목을 꽤 구체적으로 보게 했다. 관계는 작품이 완성된 뒤 붙는 의미만이 아니었다. 함께 만들면서 지식을 나누고, 작동하지 않는 것을 고치고, 다른 분야의 언어를 번역하는 제작 방식 속에도 있었다. 비평수업을 준비하며 다시 확인한 작가의 발화에도 이 시기의 MAKE 문화는 “내가 아는 것을 공유하고 같이 디버깅”하는 환경으로 정리돼 있다.
그런데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몸 옆에 붙어 있던 기술이 몸과 세계를 읽는 장치로 이동한다. 〈PITAKA, 藏〉에서는 대장경판의 사진이 로봇이 처리할 수 있는 형식으로 바뀌었고, 〈Alter. I〉에서는 모션 트래킹으로 기록된 움직임을 다시 무용수가 수행했다. 2018년 〈Volumetric Data Collector〉에서는 라이다를 들고 공간을 이동하며 현실을 볼륨 데이터로 수집했고, 〈Sensory, Crystallized〉에서는 가상공간에서의 제스처가 형상을 만들고 다시 3D 프린팅을 거쳐 손에 잡히는 대상으로 나타났다. 몸과 공간을 데이터로 만들고, 다시 데이터를 몸과 사물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왕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데이터를 바라보는 방식도 변했다. 토크 초반 양숙현은 과거에는 데이터를 물질화하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데이터 자체가 물질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발표 후반에는 데이터를 작은 입자처럼 상상하면서도, 그것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단위로 보기보다 하나의 존재에 계속 속성을 붙일 수 있는 대상으로 설명했다. 인덱스와 메타데이터가 붙고 다른 데이터와 관계를 맺으면서 숫자였던 것이 점차 두터워진다는 감각이다. 녹취에서는 이 이동이 발표 초반부터 반복해서 등장하며, 이후 ‘복셀’과 ‘사변적 물질’이라는 작가의 어휘로 이어진다.
여기서 양숙현이 사용하는 말들은 다소 독특해진다. ‘복셀’은 그래픽 기술의 용어이면서 작가에게는 데이터가 여러 속성을 지닌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상상하는 말이 되고, ‘사변적 물질’은 물질과 데이터 사이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붙잡기 위한 이름이 된다. 작가는 디지털 환경에서 만들어진 존재가 물리적 사물과 같은 방식으로 감각되지 않으며, 그 때문에 계속 더 많은 것을 만들면서도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듯한 ‘강도’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이 말들이 기존 철학이나 기술 분야의 정의와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다음 회차의 비평수업에서 따져볼 문제가 되었다. 토크에서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이런 용어들이 완성된 이론의 형태로 작품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작업하며 생긴 감각을 붙잡기 위해 뒤늦게 호출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의 〈Wearable things for the future〉와 〈The Human Materialism and Synthetic Ontography〉, 〈OOX 2.0〉에서는 이 질문이 생성형 인공지능과 만난다. 〈Future Wearables〉에서는 생성 모델이 만드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웨어러블 형상을 실험했고, 〈OOX 2.0〉에서는 사람의 생년월일과 역법 정보를 데이터로 받아 물질의 비율과 언어, 이미지로 변환하는 시스템을 구성했다. 예전의 웨어러블 작업에서 사람이 직접 장치를 입었다면, 여기에서 인간은 데이터 처리 과정 안으로 들어간다. 토크의 초반과 후반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몸’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보인다.
양숙현의 발표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기술의 목록이 길어서만은 아니었다. 웨어러블, 액추에이터, 로봇, 모션 트래킹, 라이다, 포토그래메트리, 3D 프린터, 생성형 AI가 차례로 등장했지만 작가는 새로운 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이전 작업을 폐기하고 다음 유행으로 옮겨간 것은 아니었다. 각각의 장치는 몸과 이미지, 데이터와 물질 사이에서 이전과 다른 관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작업이 바뀔 때마다 작가 자신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도 조금씩 수정되었다.
토크 말미에 도착한 ‘사변적 물질’과 ‘인간물질론’은 그래서 하나의 결론이라기보다 현재 위치를 표시하는 표지에 가깝게 들렸다. 지금 작가는 물질이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가 다시 형상과 감각을 얻는 환경에서,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낸 존재를 어떤 감각으로 대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이 질문이 앞으로도 같은 이름을 유지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날 두 시간 가까운 발표가 보여준 것은 오히려 양숙현의 작업에서 기술과 그것을 설명하는 언어가 계속 함께 움직여왔다는 사실이었다.
《관계로서의 기술》에서 말하는 관계 역시 여기에서 한 번 더 복잡해진다. 사람과 기계의 상호작용만을 뜻하지 않는다. 장치를 같이 만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있고, 센서가 현실을 데이터로 옮기는 관계가 있으며, 데이터가 다시 이미지와 사물이 되는 과정도 있다. 그 사이에서 몸의 위치도, 물질이라는 말의 의미도 계속 달라진다. 양숙현의 토크는 그 이동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다음 회차의 비평은 바로 그 이동 과정에서 무엇이 선택되고 무엇이 빠지는지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