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and Cold, 게임과 전시 사이 독특한 서사 실험 “This is Contemporary”, 우림기획

This is Contemporary, 온라인 게임형 전시, 우림기획, 2022

게임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전반적인 문화의 영역에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대상이다. 우리는 일상의 많은 시간을 게임을 즐기는 데 사용하며 게임의 구조와 스타일, 표현과 서사, 방법론은 많은 다른 문화적 대상과 결과물에 영향을 주었고 또한 피드백되며 유사성을 더한다. 게임의 인터페이스와 작동 논리, 수행과 그에 따른 대가, 언어가 그렇다. 이러한 상황은 예술 영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게임은 기존의 소모성 행동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일종의 종합 예술 형식의 가능성을 확보했다. 서로 간의 형식을 차용하며 변화를 모색해온 예술은 게임 역시 포용하며 일종의 ‘미디어 믹스’와 그에 따른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근래 가상현실에 대한 새로운 활성화 시기를 맞이한 가운데 이를 다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가 게임 제작 도구, 즉 게임 엔진인 상황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림기획이 기획한 <This is Contemporary>가 게임이자 전시, 작품인 프로젝트로서 우리 앞에 서 있다. 

이 프로젝트는 워킹 시뮬레이터(Walking Simulator)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게임의 한 장르인 워킹 시뮬레이터는 말 그대로 걷는 행위가 중심에 서 있는 게임 형식이다. 게임은 플레이어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통해 게임이 구성한 가상의 현실에서의 상황, 내러티브, 등장인물 및 사물에 대한 상호작용을 통해 보다 물리적이며 직결된 몰입에 닿는다. 다른 여타 문화와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력한 직결 관계를 형성하는 ‘몰입’은 게임이 가진 독특한 특성이자 근원지이다. 워킹 시뮬레이터는 ‘걷기’라는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상호작용의 방법을 통해 게임 내 세계를 바라보며 설정된 내러티브를 추적하여 그 근원적 주제에 도달하는 게임이다. 그렇기에 서사적 성격과 특성이 강조되며 다른 게임에서의 몰입보다는 감상적 차원이 강하다. 하지만 물리적 행위를 통해 조작하고 개입한다는 게임의 특성이 유지되기에 다른 내러티브 중심의 문화인 소설이나 영화와는 차별화되는 현존감을 확보한다. 

물론 다른 게임 대비 고정된 구조와 한정된 상호작용, 서사의 감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몰입과 재미의 감각적 부분에서 약점을 가지며 정체성에 대한 의심과 함께 주류라기보다 변방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대규모 인력과 예산 등 자원이 필요한 주류 게임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소규모 또는 단독 개발과 접근이 쉬운 지점, 그리고 창작자의 주제와 메시지를 중심으로 전개할 수 있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기존 매체와는 차별화된 몰입감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은 예술에서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든다. 이러한 제한된 상황은 역으로 특정 부분을 강화하고 비틀며 해석의 여지를 풍부하게 주어 다른 관점의 메시지 전달, 게임이라는 기술적 매체에의 접근, 차별화된 몰입 경험을 이끌어 낼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This is Contemporary>는 게임, 그중에서도 워킹 시뮬레이터가 가진 이러한 지점에 대한 접속과 시도로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http://www.thisiscontemporary.kr/, 현재 온라인 공개는 종료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 www.thisiscontemporary.kr에 접속하고 처음 맞이하는 장면은 게임의 타이틀 화면이다. 우측의 메뉴 중 Play Game을 선택하면 곧 게임 조작 설명 창을 지나 여성의 나레이션을 맞이한다. 게임의 첫인상은 어떠한 상황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순간이다. 흑백의 숲에 서 있는 1인칭 FPS의 시점의 플레이어에게 들어오는 정보가 있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는데 기억나지 않는다며, 나를 잃을 것 같다고 도와달라 청하는 여성의 음성. 이곳이 가상세계임을 드러내는 듯, 옛날 윈도 98 시절의 경고창에서 출력되는 비웃음이 있다. ‘마리’라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아이의 독백이 이어진다. 주변에는 ‘사람을 따라가시오’ 라는 문구와 함께 전시  포스터가 붙어있는 입간판, 그리고 방향을 유도하는 듯한 하늘의 점멸등. 파편적 정보들이 다수의 화자로부터 쏟아지는 가운데 플레이어의 물음표는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다. 하늘에서 이어지는 점멸등이 가리키는 저 멀리 어떤 인물이 서 있는 것이 보이고 그를 향해 나아가는 중 주변에 사진과 회화 이미지가 걸려 있는 것을 확인한다. 차양막을 통과하듯 소실점에 위치한 인물화를 헤쳐 나가며 아이의 독백을 배경음악 삼아 도달한 곳은 지하실이다.

지하실에서 여성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대마와 여행과 관련된 듯한 영상을 관람한다. 곧 아래층으로 내려가 손전등을 확보하고 갱도를 나아간다. 경고창은 진행에 대한 정보와 시니컬하면서 의미심장한 정보를 나를 잊지 말라는 듯 계속 출력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표시된 갱도에서 입간판처럼 떠 있는 평면의 인물을 스치며 그들이 출력하는 독백을 기억하며 나아간다. 이윽고 어두워진 공간에서 습득한 아이템인 손전등을 켜고 마주한 것은 벽에 새겨진 꿈, 사랑, 회복, 진실, 행운과 같은 바람이 닿는 단어들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분열하고 곧 갱도는 붕괴하여 수많은 에러 메시지와 코드로 가득 찬 공간으로 전이된다. ‘너무 많은 의미로 공간의 중력이 버티지 못했다’라는 여성의 말과 함께 플레이어는 이미지로 둘러싸인 회랑으로 추락한다. 플레이어와 함께 많은 두상이 함께 추락하는 상황에서 회랑 벽의 반복되는 이미지를 감상하며 어느새 전시장 복도에 서게 된다. 

이곳에서 기묘하게 뒤틀린 작품들, 그리고 그 환경에 당황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전한 경고창의 시니컬한 비꼼과 의문을 함께 한 채 정면 문 너머의 원형 전시장에 다다른다. 똑같은 모습의 오브제 5개가 전시되어있고 단 3번의 기회 속에서 진짜를 찾으라는 미션을 받는다. 선택의 결과에 따라 각기 다른 공간에 도달하여 영상과 음성을 듣는다. 그 후 열린 문을 통해 다다른 곳은 하늘이 보이는 옥상 정원이다. 여성의 목소리는 이곳에 있는 식물이 마리화나라는 것을 알게 되며 마리화나가 가진 수많은 의미와 기능, 가치로 인해 마리화나 꽃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즐길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녀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라는 질문이 주어진다. 그간의 여정에서 마주한 사건과 이미지, 대화, 정보를 떠올리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경험에 닿는 자막, ‘대체 잃어버린것이 무엇인가’, ‘난 무엇을 좇았던 것인가’를 바라보며 혼란이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플레이어는 화면을 가득 채운 선택지를 마주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화면에는 -E.N.D-가 출력되고 그간의 여정을 기록한 듯한 영상이 뒤로 감기며 플레이어는 다시 출발지였던 숲 속 길에 서 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지, 게임을 계속 플레이할지, 종료할지를 선택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 게임은 의문을 생성하는데 충실하다. 다른 기성 게임과 비교할 때 그래픽, 연출, 상호작용의 폭과 종류 등 많은 부분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최소한의 자원과 표현 안에서 나레이션과 성우를 통한 메시지 전달, 내러티브와 공간 분위기 간의 매칭, 참여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식은 게임 플레이 중 생성되는 혼란과 알 수 없음에 연결되어 ‘이게 뭐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이 의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에서도 플레이에서 이탈되지 않을 수 있는 몰입을 유지하는 독특한 지점을 이루어냈다. 게임 자체에 대한 해답은 존재한다. 게임 플레이를 진행하며, 한 번, 두 번 반복하며 회차 플레이를 진행하면서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맞이하는 정답지는 프로젝트 웹페이지 http://woorim.work/ 이다. 한 회의 플레이가 끝나고 ‘게임 플레이를 종료한다’라는 선택지를 택하면 이 웹페이지에 연결된다. 

플레이어는 게임 플레이 도중 막막하고 답답했던 여러 의문 지점에 대해 이곳에서 밀도 있는 답과 이야기를 얻게 된다. 결국 이 프로젝트에서 게임과 웹페이지는 무엇이 메인이고 무엇이 부차적이다가 아닌 동등한 연결 구조를 가진 요소이자 장치로 존재한다. 게임은 저밀도의 매체로서 플레이어에게 의문과 추적의 동력, 그리고 막연함과 사고의 단서를 제공한다. 되돌아갈 수 없는 일방향 워킹 시뮬레이터는 여러 등장인물과 나레이션, 텍스트, 질문과 답변 등의 다양한 접촉 방법을 통해 구성의 단순함과 불친절한 정보 상황을 몰입으로 연결시켰다. 게임 플레이를 마치고 지속적으로 쌓여 온 의문과 답답함이 폭발하기 전, 게임은 정보의 덩어리이자 고밀도의 매체인 웹페이지에 연결시킨다. 게임은 흥미 유발과 진행 당위성을 위한 프롤로그이자 브릿지로서의 서사 장치로, 웹페이지는 폭발적인 질문을 해소하기 위한 또 다른 서사 장치로서 구성되고 연결되었다.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핫/쿨미디어의 은유가 말하듯 차가운 미디어로서의 게임은 낮은 밀도를 통해 열린 시도와 의문을 제기할 영역을 제시하고, 뜨거운 미디어로서의 웹페이지는 충실히 간극을 채우며 앞서 만들어 낸 다양한 의문과 해석을 증강시켜주었다. 이러한 차갑고 뜨거운 미디어 조합은 우림기획이 바라보았던 게임과 전시의 형식 실험, 오프라인과 온라인 간의 번역과 전환 시도, 당연한 관념과 사실을 향한 질문과 그 답변이었고 의미 있는 사례로 자리했다. 

또 한 가지 플레이하며 중요하게 바라보았던 지점은 참여작가의 작품에 대한 게임 이식의 상황이었다. 기획의 목표 중 전시로서의 게임이 있었던 만큼 오프라인 세계에서 탄생한 작품이 어떠한 시각과 과정을 거쳐 게임 세계 안에 자리했는지는 중요했다. 단서로서 작품 이미지가 배열된 구간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고 김무무 작가의 <과잉 그리고 허무>가 펼쳐지는 추락 회랑, 오세린 작가의 영상작품이 정육면체 표면에서 출력되는 큐브 오브제는 물리적 작품의 비물리적 변환에 있어 충분히 독특했고 감각적이었다. 기획자의 메시지이자 창작인 등장인물의 나레이션은 성우를 통해, 경고창을 통해 단순 텍스트를 넘어 플레이의 끈을 놓지 않게 해 준 몰입 장치였다. 이러한 게임에 대한, 기획에 대한 시도가 오늘날의 다양한 문화, 매체, 기술, 공간이 서로 중첩, 교류, 이식되는 가운데 각자의 시각과 사고에 자극과 확장의 단서를 제공하는 발화점으로서의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지점에서 의미를 찾아본다. 

프로젝트 웹사이트 링크

허대찬 (앨리스온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