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킹룸(forking room)‘은 매해 초중반, 시야에 모습을 보이며 봄을 알리고 기술과 문화에 대한 지적 욕구를 들쑤셨으며, 나 자신의 게으름을 질타하는 이름이었다. 이곳은 잔잔하지만 규칙적이고 한 걸음 걸음이 잔향이 길게 남을 정도로 명료한 활동이고 집단이며 담론이다. ‘포킹(forking)’이라는 단어는 이미 하나의 선언이다. 오픈소스 생태계에서 코드가 분기되어 여러 갈래의 가능성으로 뻗어나가는 행위. 정해진 답이 없고, 각각의 가지치기가 나름의 논리와 책임을 갖는 과정. 포킹룸은 그 이름 자체로, 결론이 아닌 과정을 공유하겠다는 태도를 이미 품고 있다.
이 플랫폼을 만들고 10년 가까이, 10번의 발걸음을 이어온 사람들은 강민형, 송수연, 최빛나 세 명이다. 이 조합 자체가 하나의 구조적 진술이다. 광주에 기반을 둔 큐레이터 강민형의 실천을 이해하려면 그가 운영해온 두 플랫폼부터 봐야 한다. 하나는 바림(Barim)이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광주에서 운영한 비영리 예술공간으로, 실험적 예술 실천과 레지던시를 기반으로 젠더, 기후, 세계화, 지역성 등의 의제를 일관되게 다뤄왔다. 또 다른 하나는 DEGITAL이다. ‘digital’의 의도적 오표기다. 접두사 ‘de-‘(거부, 부재, 거절)를 앞세워 디지털이라는 단어 자체를 비틀고, 페미니즘이 언어를 재전유하는 방식을 빌려 기술에 대한 다른 태도를 제안하는 전시·저널 플랫폼이다. 기술을 도구로 보지 않고 예술적 실험이자 현재적 사고를 확장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선언이 이름 안에 이미 새겨져 있다.

이 두 실천의 바탕에는 그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탈중심성(de-centrality)과 초지역성(translocality)의 개념이 있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라이브오르간 토크에서 ‘탈중심화된 실천들‘을 발표하고, 서울과 비서울 위계를 비껴나가는 예술 실천의 조건을 꾸준히 사유해온 것은 이 연장선에 있다. 2024년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트 뮤지엄 마가렛 윌리엄스 펠로우(Margaret F. Williams Memorial Fellowship in Asian Art)로 선정되어 아시아적 관점에서 동시대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연구한 이력도 같은 축에서 읽힌다. 서울 중심도 아니고, 서구 기준도 아닌 자리에서 기술 담론을 재위치시키려는 일관된 태도의 지속이다.
강민형이 포킹룸에 합류한 것은 2022년이다. 그 이전까지 포킹룸은 언메이크랩(송수연, 최빛나)의 프로젝트였다. 2022년 ‘합성계의 카나리아’를 기점으로 세 사람이 공동기획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마침 서울시립미술관의 온라인 비평 플랫폼인 세마 코랄(SeMA Coral)에서 포킹룸에 대한 대담이 기획된 것도 이 시기였다. 그 자체가 하나의 신호일 것이다. 독립 플랫폼으로서의 포킹룸이 제도 바깥에서 구축한 비평적 언어가 기관의 주목을 받는 국면으로 전환되는 그 지점이다.

송수연과 최빛나는 언메이크랩(unmake lab)으로 함께 활동하는 미디어아트 작가이자 연구자 듀오다. 언메이크랩이라는 이름 안에는 이미 하나의 방법론이 있다. ‘만들지 않음(unmake)’. 기술의 논리를 따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논리를 역방향으로 해체하면서 그 안에 내장된 정치적·생태적 구조를 드러내는 실천. 그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AI의 예측적 본성을 교란하는 서사와 합성 민속지(synthetic ethnography) 등을 통해 기술의 메커니즘을 오용하고 증폭해 정치적, 생태적 측면을 드러내는 작업.” 여기서 ‘오용(misuse)’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저항의 몸짓이 아니다. 시스템이 의도한 방향과 다르게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시스템 자체의 논리를 가시화하는 방법론적 태도다.
언메이크랩의 실천에서 특히 중심적인 개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의 발전주의 역사와 기계학습의 추출주의를 교차시키는 시선이다. AI 시스템의 데이터 수집·분류·예측이 단순한 기술적 과정이 아니라,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추출-성장의 논리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일반자연(Generic Nature)이라는 개념이다. 이미지 데이터셋 안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며 표준화된 자연의 이미지들, 그러니까 알고리즘이 학습하고 재생산하는 ‘자연’의 지층이 어떻게 실재하는 생태 위기를 균질화하고 비가시화하는지를 다룬다. 최근 작업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과 동명의 책 『잠재공간 속의 생태학: 재난, 생성신경망, 그리고 비미래』(미디어버스, 2024)는 이 두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거대 생성 모델이 쓸모없다고 방치한 사적이고 소규모의 데이터셋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소환한다. 예측이 아닌 회상, 생성이 아닌 부재의 가시화. 이것이 언메이크랩이 AI의 추출주의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이 실천의 언어가 포킹룸의 의제 계보와 공명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포킹룸은 언메이크랩 자신의 활동 목록에도 핵심 플랫폼으로 명시되어 있다. 두 실체는 별개가 아니다. 언메이크랩의 연구 실천이 포킹룸이라는 공론장의 형식을 통해 집단적 사유로 확장되는 것이다. 강민형의 탈중심적 큐레토리얼 관점이 이 구조에 외부적 시선을 더한다. 수도권도 아니고 대형 기관도 아닌 자리에서, 기술 담론의 가장 예민한 지점들을 매년 의제로 세팅하는 힘은 이 곳에서 드러난다.
2017년 ‘Datafied Self’로 시작된 포킹룸은 올해 2026년 열 번째 주제를 맞이했다. 이 타임라인을 살피면, 궤적에서 세 개의 단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단계(2017–2019)는 기반 탐색의 시기이다. 데이터화된 자아, 스마트 사물, 연산장치라는 키워드로 AI 이전 시대의 디지털 기술 환경을 비판적으로 읽어냈다. 두 번째 단계(2020–2022)는 전환기다. 기계학습 데이터셋의 문화정치학과 합성 미디어의 진가짜(real-fake) 문제로 이행했는데, ChatGPT 공개 이전임에도 생성 AI의 도래를 선제적으로 의제화했다는 점을 보았을때 지금 돌아보면 더욱 선명한 시기다. 세 번째 단계(2023–2026)는 생성 AI 해부기다. 프롬프트(2023) -> 스케일(2024) -> 기술의 정치화(2025) -> 슬롭(2026)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AI의 부상을 기술적 흥분이 아닌 생태적·정치적·존재론적 문제로 단계적으로 심화시켜온 궤적이다.
이 계보에서 언메이크랩의 실천과 포킹룸의 의제 사이의 내적 연속성이 드러난다. 2021년 ‘부재하는 데이터셋’이 언메이크랩의 핵심 문제의식과 정확히 겹치고, 2022년 ‘합성계의 카나리아’는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의 방법론적 기반이 된 합성 미디어 논의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언메이크랩의 언어를 빌리자면, 2026년의 슬롭은 AI 추출주의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과잉생산의 지층이다. 일반자연이 자연의 이미지를 균질화했다면, 슬롭은 인간 언어와 이미지 전반을 균질화하고 있다.

2026년의 포킹룸이 선택한 키워드는 ‘슬루우우우웁(Sloooooop)‘, 슬롭(slop)의 점성과 미끄러움을 의태어로 늘여 쓴 이름이다. 슬롭은 원래 ‘음식 쓰레기’나 ‘진창’을 뜻하는 영어 단어였지만, 생성형 AI가 대량으로 쏟아내는 저밀도 콘텐츠를 지칭하는 인터넷 용어로 빠르게 재맥락화되었다.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를 가릴 것 없이 아무도 명시적으로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의미의 밀도 없이 모든 빈 공간을 채워가는 것들.
포킹룸의 기획 텍스트는 슬롭의 형태적 특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슬라임처럼 미끄럽고, 젤과 같아 어떤 형태든 될 수 있으며, 달라붙지 않는 끈적함.” 이 묘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슬롭을 단순히 ‘나쁜 콘텐츠’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의 존재론적 특성인 형태가 없다는 것,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도 모든 공간을 채운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름 ‘Sloooooop’에서 ‘oop’을 늘여 쓴 것도 미끄러지는 과정 자체를 시각화한 명명이며, 그 미끄러짐이 얼마나 길고 질기게 이어지는지를 형태로 보여주는 제스처다.
여기서 포킹룸 2026의 핵심 긴장이 발생한다. 슬롭은 기술의 실패가 아니고, 무책임함의 시스템적 산물이다. 기획 텍스트가 지목하는 것은 “막대한 에너지가 투입된 쓰레기와 그 쓰레기 생산을 위한 정교한 시스템”이다. 즉, 고도로 정교한 인프라가 저밀도의 출력을 공장처럼 대량 생산하는 역설적 구조이다. 언메이크랩의 언어로 되읽으면, 이것은 추출주의의 최종 형태가 될 것이다. 한국의 발전주의가 자연을 채굴 가능한 자원으로 환원했듯, AI 자본주의는 인간의 언어와 이미지 전체를 학습 가능한 원료로 환원하고, 그것을 다시 저밀도의 슬롭으로 되돌려 보낸다.

올해 포킹룸에 참여한 리서치랩의 열 명 연구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생태계를 해부했다. 생태계의 관찰자로서 접근한 연구로 맥락적 열화(김효진)는 생성형 AI의 재귀적 생성 과정에서 서사가 소거되는 방식을 추적했고, 생성형 AI 서비스의 기능적 설계가 슬롭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양산하는지를 분석한 박민아, 유흥업소 AI 만화의 범람이라는 구체적 현상을 통해 슬롭파간다의 정치성을 건드린 배진선, 텍스트 슬롭의 생성과 폐기 구조 속에서 출판과 저작권의 의미를 되짚은 이열음의 연구가 같은 영역상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슬롭의 특성을 오히려 실험 재료로 삼는 시도로 LLM의 슬롭성을 이용해 알고리즘 이면에 은폐된 데이터 실체를 드러내는 방법론을 구사한 권혁준, 슬롭을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주체인 ‘나’ 자신도 슬롭의 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다층적으로 해부한 김명규, 시적 언어와 맥락화를 실마리 삼아 무맥락 LLM의 미적 가능성을 탐구한 김성백의 연구가 있었다. 비가시광선 이미지 기술의 역사를 추적하며 기술로 구현된 이미지의 슬롭적 본질과 권력 장치로서의 시각화를 탐구한 손혜주의 연구도 같은 맥락선상에 놓였다.
눈에 띈 연구로 슬롭을 하나의 장르로 보려는 시도(김예슬)가 있었다. ‘장르’라는 규정은 어떤 대상에 역사적 계보와 내적 논리, 수용 미학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그는 슬롭을 제거해야 할 노이즈가 아닌 해석되어야 할 텍스트로 읽는 태도의 전환을 보였다. 그리고 생성형 AI가 팽창하며 균질화되는 세계에 맞서 탈합성적 세계관을 상상하고 공존의 가능성을 그린 조한결의 연구가 이 열 편의 마지막을 조용히 받쳤다. 이들의 관점과 행보는 포킹룸이 진행해 온 근본적 방법론, 문제를 피하지 않고, 문제 안에서 실마리를 찾는다와 일치하는 지점일 것이다.

8개 작품이 참여한 전시에서도 다층적인 방향이 공존했다. 생성형 AI로 여성 신체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베스 프레이(Beth Frey)와 신체의 재현 한계를 다루는 자원(Jawon)의 작업은 슬롭이 젠더와 신체의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캐롤라인 신더스(Caroline Sinders)의 작업은 알고리즘이 재현해낼 수 없는 극도로 개인적인 기억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같은 재현 불가능성을 다른 각도를 통해 증언했다.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의 데이터센터 시각화는 슬롭 생산의 물리적 인프라인 실재하는 에너지와 열과 냉각수를 가시화함으로써 추상적 논의를 지표면으로 끌어내렸다.
sofolofo(남궁예은)와 김우섭의 렉처 퍼포먼스 또한 시선을 강렬하게 끌었다. 일제강점기 ‘벽돌신문’의 물리적 검열을 알고리즘으로 재해석하는 이 작업은 OCR 오류와 LLM의 환각을 의도적 오독으로 전환한다. 기계의 실패를 기계의 상상력으로 읽어내는 태도로서의 관점은 동시에 식민지적 검열의 역사와 알고리즘적 삭제 사이의 불편한 연속성을 드러내었다. 이것은 포킹룸이 2025년 ‘레프트 테크’에서 제기했던 기술의 정치성이 2026년의 작품 언어로 직접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포킹룸이 매년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기술 담론은 빠르게 지나간다. 슬롭이 범람했고, 다음 시즌에는 또 다른 용어가 출몰할 것이다. 그 속도에 맞서 포킹룸이 함께 하는 것은 속도를 늦추고, 명명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슬롭의 생산 구조를 해부하고, 슬롭에 대응하는 방법론을 실험하며, 슬롭 앞에서 어떻게 의미를 생산할 것인가를 함께 물었다. 이는 필요했고, 필요하며, 필요한 행위이다. 기획 텍스트 첫 번째 무단의 말미의 발언이 흥미롭다. “공장에서 매대로 향하는 길에 서서 운반 트럭을 탈취할 수 없을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 풋, 하고 웃음을 자아냈던 이 문장은 저항의 언어이기도 하고, 유머의 언어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지속적인 개입의 의지를 담은 언어일 것이다.
슬롭은 미끄럽다. 형태가 없고, 어디에도 달라붙지 않으며, 끊임없이 흘러넘친다. 이 상황에서 그 미끄러움을 인식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름 붙이고, 관찰하고, 그 논리를 역공학하는 것은 이미 미끄러지지 않기 위한 마찰을 만드는 행위일 것이다. 포킹룸이 10년 가까이 지속해온 것이 바로 그 마찰이다. 봄마다, 규칙적으로, 잔향이 길게 남는 방식으로.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aliceon.co.kr 편집장